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빛이 굴절해 배가 하늘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여요

입력 : 2021.03.16 03:30

신기루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최근 영국 해안가에서 신기한 현상이 목격됐다고 BBC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습니다. 커다란 화물선이 바다에 떠 있는 게 아니라 공중에 떠서 이동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봤다는 것이지요. 수평선 위에서 빠른 속도로 운항하는 선박을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기도 했어요. 배가 공중에 떠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인 것은 '신기루 현상' 때문입니다.

물체가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신기루(蜃氣樓·Mirage)는 물체가 실제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이는 현상입니다. 신기루는 빛의 굴절 때문에 발생해요. 우리가 물체를 인식하려면 빛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물체에 반사된 빛이 우리 눈으로 들어오면 비로소 물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 눈은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물체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빛이 굴절되면 실제 위치와 다른 곳에 물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물이 담긴 컵 속에 빨대를 넣고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면 마치 빨대가 꺾인 것처럼 보이는 걸 경험한 적이 있을 겁니다.

공기나 물 등 빛이 통과하는 매개가 되는 물질을 '매질'이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매질의 경계를 통과할 때 빛의 진행 방향이 바뀌어요. 이 현상이 바로 굴절이에요. 빨대 전체가 온전히 공기 중에 있거나 물속에 있을 때는 꺾이지 않고 곧은 모습 그대로 보이는데 한쪽은 공기 중에, 다른 한쪽은 물속에 있을 때는 매질이 다르기 때문에 빛이 굴절돼 빨대가 꺾여 보이는 것이랍니다.

빛의 굴절은 같은 매질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공기 중에는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수증기, 먼지, 바이러스 등 온갖 물질이 포함돼 있어요. 공기를 구성하는 이런 입자들에 변화가 일어나면 빛의 진행 방향이나 속력이 바뀝니다. 온도 변화가 대표적인데요. 온도가 높아지면 밀도가 낮아지고,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높아져요. 빛이 이렇게 온도에 따라 공기 밀도가 다른 두 층을 지날 때 굴절이 일어나 신기루가 생기죠. 이런 이유로 신기루는 사막이나 극지방, 뜨거운 여름날의 아스팔트 도로 등 온도 변화가 큰 곳에서 더 잘 나타나요.

나폴레옹도 신기루 경험했대요

한여름에 도로를 달리는 차를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도로 바로 위에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푸른 하늘이 빛의 굴절 때문에 실제 위치보다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 현상인데요. 하늘이 도로 위에 겹쳐서 물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사막에서 물이 고여있는 오아시스가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갔더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겁니다. 이것 역시 하늘이 사막 위에 겹쳐서 물처럼 보이는 신기루 현상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도 1798년 이집트 원정 때 이 신기루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물체가 실제보다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아래 신기루'라고 불러요. 아래 신기루는 땅에 가까운 공기는 뜨겁고, 위쪽의 공기는 차가우면 나타나요.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뜨거운 공기 속을 통과하면서 빛의 진행 방향이 위로 휘어지는 굴절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 눈에는 굴절해서 들어온 실제 위치가 아니라 빛이 직진으로 이동했을 거라고 생각되는 위치에 물체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어떤 물체가 실제로 위치한 곳의 아래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실제 위치에 있는 물체와 신기루가 모두 시야에 보이면 두 가지 모습을 다 볼 수 있어요. 이 두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에 동시에 담을 수도 있지요.

'위 신기루'는 아래 신기루와는 반대로 물체가 실제 위치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죠. 추운 극지방의 해안가에서 멀리 있는 배나 작은 빙하 등을 관찰할 때 이런 현상이 보입니다. 신기루는 빛이 볼록하게 휘기 때문에 볼록렌즈로 본 것처럼 물체가 상하좌우가 바뀐, 뒤집힌 모습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특징이에요.

'마법 부리는 요정'이 만든 신기루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라는 신기루 현상도 있어요. 파타 모르가나는 물체의 모습이 실제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 신기루의 일종인데요. 공기의 밀도는 온도, 수증기 함량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아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타 모르가나는 밀도가 다른 여러 층의 공기를 통과하면서 빛이 복합적으로 굴절돼 만들어진 현상으로 추정해요. 대기의 조건이 복잡해지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신기루가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일반적인 신기루와 다르게 뒤집힌 모습이 아니라 똑바로 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해요. 또 위 신기루는 차가운 바다에서 주로 관찰되지만, 파타 모르가나는 여름철 잔잔한 바닷가에서도 관찰된다고 해요. 이번에 영국 해안가에서 배가 공중에 떠 이동한 것처럼 보인 현상도 파타 모르가나입니다.

파타 모르가나는 이탈리아어로 요정 모르가나를 뜻해요. 모르가나는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섬이나 육지를 만들어서 뱃사람들을 유혹했다는 전설 속의 요정인데요. 파타 모르가나 현상이 마치 모르가나가 마법을 부려서 만들어 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착시]

착시는 시각과 관련해 생기는 착각을 뜻합니다. 인식 과정에서 뇌가 착각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배가 고플 때 어떤 그림을 음식물 그림으로 잘못 보는 것이 착시입니다. 반면 신기루는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물체의 위치가 다르게 보이는 거죠.

길이가 같은 선이 주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대표적인 착시입니다. 같은 길이의 선분 양끝에 화살표를 그렸을 때 화살표 방향이 바깥쪽인 선분이 더 길어 보입니다. 과거 경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도 착시예요.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