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정부가 잘못하면 시민들이 집단 저항할 수 있어요

입력 : 2021.03.03 03:30

시민 불복종 운동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보라색 물대포를 쏘는 모습(위). 1961년 학생들이 ‘프리덤 라이드’운동을 벌이는 모습(중간).‘ 소금 행진’하는 간디(아래). /트위터, 게티이미지코리아, 위키피디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보라색 물대포를 쏘는 모습(위). 1961년 학생들이 ‘프리덤 라이드’운동을 벌이는 모습(중간).‘ 소금 행진’하는 간디(아래). /트위터, 게티이미지코리아, 위키피디아
미얀마에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시민들이 거세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깡통과 냄비를 두들기거나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등 다양하게 시위를 벌이고 있어요. 미얀마 군인·경찰은 총까지 쏴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졌죠. 그러자 최근 한 수녀가 무장한 경찰들 앞에 무릎을 꿇고 총을 쏘지 말라고 호소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정부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시민 불복종'이라 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법률이나 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예요.

소금법에 반대하며 385km 행진했어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면서 1882년 만든 소금법에 맞서 '소금 행진'을 벌였어요. 소금 생산을 정부가 독점하고 비싼 세금을 물리자 인도인들 불만이 커졌고, 1930년 3월 간디는 영국의 이런 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소금법 폐지를 주장하는 평화 시위를 펼친 거죠. 당시 인도인들은 이 '소금행진'을 산스크리트어로 '진리에 대한 헌신'이라는 뜻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이라 불렀어요.

간디는 소금법에 반대하며 인도 서부 아마다바드에서 단디까지 약 385㎞를 행진하는 비폭력 시위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70명만 함께했지만 점점 더 많은 군중이 참여했고 수백 명으로 늘어났죠. 많은 여성은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합류해 바닷물로 소금을 만드는 시위도 했어요. 경찰이 시위대를 마구 때렸지만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고 소금을 직접 제조하고 판매하면서 저항했어요. 그해 말까지 6만명 넘는 인도인이 불복종 시위로 감옥에 갇혔다고 해요.

버스 타고 다니며 인종차별 철폐 외쳤어요

1863년 미국에선 노예제가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남부에서는 식당, 극장,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흑인이 서로 접촉하는 것을 막는 '짐 크로법'이 남아 있었어요. 흑인을 조롱하는 뮤지컬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에서 따온 법 이름이었죠. 일부 시민은 이런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해 흑인 인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가 대표적인데 시위대들은 버스를 타고 미국 남부를 돌아다니며 인종차별에 항의했어요. 짐 크로법에 저항했지만 폭력은 쓰지 않은 시민 불복종 운동이에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버스에 불을 지르고 시위대를 때리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같은 남부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 운동은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알렸어요. 결국 1954년 미 연방대법원이 "인종 분리는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 법은 1965년이 돼서야 없어졌답니다.

보라색 빗속에서 저항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시민 불복종 운동이 있었습니다. 남아공에는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 불리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제도 때문에 흑인들은 백인들과 다른 지역에 거주해야 했죠. 넬슨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이끌다가 투옥되었을 때 1989년 9월 케이프타운 거리에서 수천 군중이 반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체포 대상을 쉽게 구별하기 위해 보라색 염료를 섞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어요. 시위대와 주변 건물, 거리에 온통 보라색 물줄기가 뿌려졌지요. 그래서 이 행진을 '보라색 빗속에서의 저항(Purple Rain Protest)'이라고 불러요.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뒤 아파르트헤이트를 없앴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대 '시민 불복종' 운동

시민불복종 운동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회적 규범인 법의 수호를 강조한 거죠. 많은 사람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 질서가 혼란해지고 궁극적으로 법의 존재가 무의미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악법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면 악법은 계속 시민들을 고통에 빠뜨릴 수 있어요. 시민불복종 운동은 공개적으로 그 법을 어겨 악법이 왜 부당한지를 알리는 행동입니다. 그 대신 그에 따른 처벌을 감수해요. 부당한 법을 어기고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 법이 왜 부당한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거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이라는 말은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9년 '시민 불복종'이라는 책에서 처음 썼답니다. 그는 흑인 노예제에 반대한다는 차원에서 세금 납부를 거부했어요. 흑인 노예제를 유지하는 정부의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한 거죠. 소로는 "정부가 사람들에게 부당한 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해 사람들이 불의에 가담하게 한다면 감옥에 가더라도 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로의 사상은 간디나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등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