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법학 에세이] 장난삼아 한 약속, 지켜야 할까?… 농담이 확실하면 무효예요

입력 : 2021.02.24 03:30

펩시재판

시험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친구가 놀리면서 "네가 이번에 100점을 받으면 내가 1억원 준다"고 말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이 말을 듣고 정말 100점을 받았다면 그 친구에게 1억원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비슷한 사례를 다룬 유명한 재판이 있었어요.

1995년 11월 미국의 콜라 회사 펩시는 콜라 한 상자당 10포인트씩을 주고 포인트를 모아 오면 사은품을 주는 이벤트를 했어요. 경품은 티셔츠, 선글라스 등이었는데요. 만약 700만 포인트를 모으면 전투기를 준다고 했습니다. TV 광고에 전투기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까지 넣었죠. 700만 포인트를 모으려면 1680만 캔이나 되는 콜라를 마셔야 했어요. 그만큼 콜라를 사려면 약 70만달러(약 7억8000만원)가 필요했지요.
1995년 제작된 펩시 콜라 이벤트 광고의 한 장면이에요. /유튜브 캡처
1995년 제작된 펩시 콜라 이벤트 광고의 한 장면이에요. /유튜브 캡처

대학생이었던 존 레너드는 이 이벤트를 보고 콜라 구입 비용 70만달러만 있으면 약 3380만달러(약 376억원)에 달하는 전투기를 받을 수 있어 엄청난 이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투자자들을 모았고 결국 70만달러를 마련했어요. 그는 1996년 3월 실제로 콜라는 사지 않고 콜라값 70만달러를 펩시에 보내면서 전투기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펩시는 광고 내용이 농담이었다고 했지만, 레너드는 펩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말로 하는 약속도 계약이 될 수 있고, 광고로 한 약속도 법적인 효력이 발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처음 제안을 한 사람이 장난 삼아 해 본 말이고, 상대방도 그게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이걸 법적인 용어로는 진심이 아닌 말이라는 뜻으로 '비(非)진의 의사표시'라고 합니다.

법원은 펩시가 레너드에게 전투기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어요. 전투기를 70만달러에 주겠다고 광고한 게 진지한 제안일 리 없다는 거죠. 또 군대에서 사용하는 전투기를 민간인에게 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봤어요. 법원은 누구나 광고를 보고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곽한영·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