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물건] 학문의 진리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 담겨있어요

입력 : 2021.02.22 03:30

학위복

최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는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졸업식을 하고 있습니다. 초·중·고교와 달리 대학교 졸업식에서는 학생들이 망토처럼 생긴 옷과 사각형 모자를 쓰는데요. 모자를 하늘에 던지면서 졸업을 축하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이렇게 대학 졸업식에서 입는 옷과 모자를 학위복, 학위모라고 부릅니다.

중세에는 보통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교육했는데요. 성당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유 학문이나 전문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직을 만들었어요. 성당에서 떨어져 구성원 공동 이익을 스스로 지키고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보장받기 위해 대학을 만든 거죠.

지난 19일 서울 삼육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하늘로 학위모를 던지는 모습. /뉴시스
지난 19일 서울 삼육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하늘로 학위모를 던지는 모습. /뉴시스
학위모와 학위복에는 당시 의식이 반영되어 있어요. 학위복으로 주로 입는 검정 가운은 성당에서 신부들이 미사를 집전할 때 입는 예복이나, 성가대 등에서 입는 복장과 비슷합니다. 12세기 대학생들은 성직자 외출복을 교복으로 입었다고 해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운을 입으면 그 안에 입는 옷은 고급 양복인지, 허름한 일상복인지 알 수 없었어요. 즉 가운을 입은 사람 신분이 숨겨지는 거죠. 이런 복장은 신분과 상관없이 학문 앞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학위복은 그러니까 학문의 자유와 학문의 진리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해요.

학위모에 달린 기다란 실 뭉치 장신구 '수(繡)술'은 고대 로마에서 노예가 자유를 얻었을 때 그 상징으로 수술이 달린 모자를 쓰게 한 데서 유래했어요. 사각형은 중세 유럽 대학의 주요 학문이었던 신학, 철학, 법학, 의학 등 네 학문을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8년 연세대 전신인 제중원의학교 1회 졸업식 때 이런 학위복을 처음 선보였어요. 졸업생들은 검은 가운을 입고 검은 사각모를 썼다고 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은 졸업생들은 후드가 달린 학위복을 입어요. 후드는 옷의 목 부분에 달려 머리 부분을 덮을 수 있는 쓰개인데요, 석사·박사 학위 소지자로서 평생 자신이 공부한 학문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무거운 책무를 목에 걸어주는 의미라고 합니다. 후드 색깔은 다양합니다. 후드 색은 어느 학문을 전공했는지를 나타내요. 후드 색으로 전공 분야를 나타내는 건 1893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시작됐습니다. 졸업생들의 지위, 소속을 분명하게 나타내려고 한 거죠. 대학마다 전공을 나타내는 색상은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이처럼 졸업식에서 입는 복장은 대학이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기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대학의 교표(校標·학교를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에 방패 모양이 들어가는 것도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라는 의미예요.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