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이토록 슬픈 플라멩코 춤, 스페인 국민시인 작품이래요

입력 : 2021.02.22 03:30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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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열리자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들이 우울한 선율에 맞춰 플라멩코 춤을 춥니다. 스페인 전통춤인 플라멩코는 주름 잡힌 붉은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리며 열정적으로 추는 춤이죠. 그런데 상복 입은 여인들의 플라멩코에서는 어딘지 모를 슬픔이 느껴져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 뮤지컬은 20세기 스페인에서 가장 사랑받은 시인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사진>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하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했습니다. 이 뮤지컬은 서울 정동극장에서도 공연이 한창입니다. 국내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스페인 뮤지컬을 플라멩코와 함께 감상할 좋은 기회입니다.

시골 마을 여인들의 비극적 이야기

알바의 집은 로르카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1936년에 완성한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로르카의 작품 중 극적 요소가 가장 풍부하다고 평가받아요. 스페인 남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베르나르다 알바는 당시 스페인 기독교 사회의 엄격함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의 희생양이자 대변인 같은 인물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뒤 다섯 딸에게 "앞으로 8년 상을 치르고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고 명령해요. 하지만 결말은 비극적입니다.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대항하며 자신의 삶을 찾으려던 막내딸이 죽음으로 맞선 거죠.

스페인 일깨운 지식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1898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1918년 첫 산문집 '인상과 풍경' 발표하고 나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로 스페인 고유의 지역적 특색, 전통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발표했는데요. 대표작은 1928년 출간된 '첫 번째 집시 가곡집'입니다. 이 작품이 스페인 국가 문학상을 받으면서 그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 작가가 됐어요. 그는 여성들의 삶을 담은 비극 3부작을 집필했는데요.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입니다. 세 작품 모두 안달루시아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인들의 자유롭지 못한 삶과 결혼을 그렸어요. 이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어요.

2018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공연했던 뮤지컬‘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의 한 장면입니다. /게티이미지
2018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공연했던 뮤지컬‘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의 한 장면입니다. /게티이미지
스페인은 20세기 초 사회주의 노선의 공화당파와 반정부군인 파시즘의 프랑코파가 맞붙으면서 정치적 혼란이 절정으로 치닫는데요. 로르카는 이때 38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당합니다. 자유와 이성을 주창하던 로르카의 세계적인 명성에 위협을 느낀 프랑코파가 '소련의 스파이'라는 죄목을 덮어씌워 총살해버렸어요. 하지만 인간 본성과 자유에 대한 로르카의 솔직한 글과 작품들은 그의 탄생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안달루시아의 지역적 색채 담았어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스페인의 지리적 배경부터 알아야 해요. 로르카는 스페인 남부에 있는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지중해, 대서양과 인접한 비옥한 땅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유대교 등 3대 종교 문화가 뒤섞여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에요.

스페인에선 안달루시아 지역에 땅의 정령인 '두엔데(duende)'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두엔데는 독특한 예술적인 혼이자 특별한 경지에 이른 예술가가 경험하는 절정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말의 '신들렸다'라는 의미와 비슷하죠. 로르카의 시와 희곡 속에는 이런 지역적 색채와 감정이 잘 담겨 있어요.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수천 년 역사의 신비한 힘'인 두엔데가 로르카의 작품으로 옮겨왔다고 믿는 것이죠.


[플라멩코]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모여 살던 집시들의 춤에서 시작됐어요. 집시는 14세기 유럽 각지로 퍼져나간 유랑 민족입니다. 이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어요.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슬픔은 플라멩코에 잘 담겨 있어요. 그래서 플라멩코를 '집시의 애환이 담긴 예술'이라고도 하죠.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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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처럼 세계 각국의 유명한 전통 춤으로는 프랑스 '캉캉', 아르헨티나 '탱고', 브라질 '삼바' 등이 있어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