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현대극의 아버지' 입센의 대표작…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아 찾아가는 여성 그려

입력 : 2021.02.16 03:30

인형의 집

아버지는 나를 인형 아기라고 불렀고, 내가 당신 집에 왔을 때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1879년 인형의 집 원작판 표지. /위키피디아
1879년 인형의 집 원작판 표지. /위키피디아
1879년 출간된 '인형의 집'은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대표작입니다. 결혼과 남녀의 역할을 다룬 작품이에요. 치밀한 구성과 사실적인 대화가 특징이죠. 인형의 집은 출간 직후 덴마크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르고 나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25년에 처음 상연됐어요.

인형의 집은 발표 직후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어요. 당시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의, 결혼해서는 남편의 부속물 같은 존재였어요. 입센은 '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여성 노라의 각성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해요.

노라는 세 아이의 엄마이며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예요. 남편 헬메르 토르발은 노라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아내를 "낭비꾼" "종달새" "다람쥐" 등으로 불러요. 그는 곧 지역 은행장에 취임할 예정이었지만, 건강이 아주 좋지 않았어요. 남편의 요양과 치료에 필요한 돈은 모두 아내 노라가 융통했어요. 남편 모르게 말이죠. 헬메르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인지도, 아내가 돈을 빌린 사실은 더더욱 몰랐어요. 당시에는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여자는 돈을 벌 수도, 빌릴 수도 없는 시대였어요. 노라는 바느질과 서류 정리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을 갚았어요. 헬메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아내에게 낭비가 심하다고 나무랐어요.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요. 노라는 옛 친구 린데 부인의 처지가 딱해 남편에게 일자리를 부탁해요. 헬메르는 린데 부인을 고용하는 대신 잔꾀와 재주를 부려서 은행에 피해를 준 크로그스타드를 해고하려고 해요. 크로그스타드는 비열한 사람이었어요. 문제는 노라가 헬메르의 치료를 위해 돈을 꾼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이에요. 더군다나 노라는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린 터였어요. 그는 노라의 약점을 남편에게 폭로하겠다며 협박도 서슴지 않아요.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비밀을 끝까지 지켜야 했던 노라는 남편에게 그를 해고하지 말라고 간청하지만 여의치 않았어요.

결국 비밀은 폭로됐고, 헬메르는 아내에게 "나의 기쁨이며 자랑이던 그녀가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 아니, 그보다 더한 범죄자였다"고 말해요. "당신은 나의 행복을 모두 부서뜨렸어. 나의 모든 미래를 당신이 망가뜨렸지"라며 세 자녀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고 소리치죠.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노라의 마음은 철저히 무너지고야 말아요.

노라는 어떻게 했을까요? 노라는 어려서는 아빠의 '인형 아기'였고, 결혼하고서는 남편의 '인형 아내'였다고 털어놓아요. 한 번도 자기 자신인 적이 없었던 노라는 그렇게 인형의 집을 떠난답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