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5000년 중국 황실의 보물 60만점은 대만에 있어요

입력 : 2021.02.15 03:30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옛 중국의 왕들은 먹고 입고 거느리는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족했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것 하나만 빼면 신선도 부럽지 않았을 정도라고 해요. 중국 왕들이 호화롭게 걸치던 옷과 장신구, 궁궐에서 사용한 가구와 그릇, 그리고 아끼던 희귀한 보물들이 궁금하지 않은가요?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혀요

국립고궁박물원은 원래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에서 개관했어요. 청나라가 몰락한 이후 500년 넘게 궁전으로 쓰던 자금성 건물 가운데 일부를 1925년 박물관으로 고쳐 시민들에게 공개했어요. 이후 일본군의 침략으로 베이징이 위기에 처하자 박물관 위원회는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겼죠. 대만에 도착한 유물은 한 점도 빠짐없이 조사를 거치고 철저한 등록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박물관은 중국 전통 궁전 양식으로 지어 1957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중국 자금성에도 고궁박물관이 남아 있지만, 황실의 가장 귀한 물건은 대부분 대만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어요.

국립고궁박물원은 중국 고대 유물과 더불어 송(10~13세기), 원(13~14세기), 그리고 명(14~17세기)과 청(17~20세기 초) 왕조에 이르기까지 5000년 중국 역사에 거쳐 내려온 유물 약 60만점을 소장하고 있어요. 중화 문화의 보물 창고라고 하며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는 곳이에요.

바위틈을 뚫고 자란 대나무 그렸죠

이 박물관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 있습니다. 먼저 목죽도<사진1>예요. 오진(吳鎭·1280~1354)이라는 사람이 그렸는데요. 오진은 가화팔경도, 어부도 등으로 유명한데, 무엇보다 '대나무의 대가'라고 해요. 중국인들이 '대나무 그림이라면 역시 이 사람'이라고 입을 모으는 작가지요.
사진1 - 오진이 그린 ‘목죽도’입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사진1 - 오진이 그린 ‘목죽도’입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그림을 보면 대나무가 좀 특이하게 생겼어요. 보통 대나무는 위를 향해 곧게 자라는데, 이 그림 속 대나무는 절벽 틈에서 옆으로 새 나와 아래로 처지다가 다시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거든요. 오진의 그림처럼 이렇게 구부러진 대나무는 흔하게 볼 수 없어요. 실제로 보고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상상한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어렵사리 바위틈을 뚫고 고생스럽게 자랐지만, 이제는 거칠 것 없이 하늘을 향해 쑥쑥 올라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요. 이 대나무의 굴곡이 한 사람이 겪는 삶이라고 하면, 하강했다가 상승하는 운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어요.

동서양의 기법이 만난 백준도

백준도<사진2>는 '세상의 온갖 말'을 그린 작품입니다. 백준도의 '준'은 빠르게 잘 달리는 말을 뜻하는 한자죠. 중국으로 귀화한 이탈리아 선교사이자 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Giuseppe Castiglione·1688~1766)가 그렸어요. 그는 다른 중국 화가들처럼 비단 위에 먹으로 그리면서도 이탈리아에서 배운 화가답게 서양에서 주로 쓰던 명암 기법을 능숙하게 혼합했어요. 동양과 서양이 만난 그림이죠. 백준도는 8미터에 가까운 두루마리로 이뤄진 거대한 그림입니다.
사진2 -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백준도’입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사진2 -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백준도’입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고궁박물원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람자의 몰입과 체험을 이끌어 내고 있어요. 백준도는 긴 두루마리로 이뤄진 작품이라 한 번에 펴서 전시하기 어려워요. 두루마리를 완전히 다 펴면 손상되기 쉬워 보통 1~2미터만 공개하죠. 또 일정 기간 빛을 받으면 그림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고궁박물원은 이 백준도를 디지털 기술로 한자리에서 보여줍니다. 글로 설명을 읽는 것보다 한결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요. 2015년에는 어린이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백준도 그려보기<사진3>' 디지털 프로그램을 선보였어요. 모니터 4대에서 그림 속 말들이 계속 화면에서 지나가고, 관람자는 그중 원하는 말을 선택해 자기 취향대로 색칠할 수 있습니다. 채색된 말은 벽면의 모니터 위에서 새로운 말 그림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나타나게 돼요. 이 프로그램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림을 눈으로 감상하고 휙 지나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그려 넣으면서 세부 이미지까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몸에 새기게 된답니다.
사진3 - 국립고궁박물원에서는 ‘백준도 그려보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사진3 - 국립고궁박물원에서는 ‘백준도 그려보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걸작이 지닌 가치만으로도 관람자를 얼마든지 끌 수 있지만, 여기에 더해 고궁박물원은 관람객들에게 체험을 위한 장치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관람자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전통 예술품과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다가가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관람자를 작품 세계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 그 작품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지름길이에요. 이러한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아 고궁박물원의 영상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은 2016년에 국제 필름 및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