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명망 높은 스님을 국가·임금·백성의 스승으로 삼았어요

입력 : 2021.02.04 03:30

고려의 대표 국사(國師)들

지난달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오랜 수난과 복원 작업 끝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 탑은 고려시대인 1085년에 승려 지광국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어요.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식으로 고려의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히지요. 우리나라 국보 제101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지광국사의 승려로서의 이름은 해린(海麟)이었어요. 그가 죽은 뒤 임금이 그의 공적을 기려 '지광(智光)'이라는 이름과 함께 '국사(國師)' 벼슬을 내리고 화려한 탑까지 세웠던 거죠. 지광국사는 어떤 인물이었고, 국사는 어떤 승려에게 주었던 걸까요?

문종 임금이 스승으로 모시다

해린 스님은 원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절에서 불교 공부를 하다 16세인 999년 정식으로 승려가 됐어요. 21세인 1004년엔 당시 승려를 상대로 치르던 과거에 급제했지요. 이후 벼슬이 점점 높아지고 명성도 높아졌습니다. 나중엔 법상종이라는 불교 종파를 이끄는 중심 인물이 됐습니다.
/그림=김영석
/그림=김영석

역대 왕들은 그를 자주 불러 불교 강의를 들었어요. 특히 고려 11대 왕 문종은 그를 아주 존경했답니다. 문종은 태조 임금 때 개성에 창건한 봉은사라는 절을 자주 찾았어요. 이곳에 머물던 해린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지요. 문종은 여러 차례 해린 스님에게 "스님, 부디 왕사(王師)가 되어 주십시오"라며 부탁했지만, 해린 스님은 그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임금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1056년 왕사, 1058년엔 국사 자리에 올랐답니다.

광종 때 정착된 국사·왕사 제도

국사(國師)는 나라의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국가와 백성, 왕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학문이나 덕이 높은 승려)에게 준 최고의 칭호였어요. 왕의 스승이라는 뜻의 왕사(王師) 역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승려였죠. 굳이 등급을 따지자면 국사가 더 높고 그다음이 왕사라고 볼 수 있어요. 왕이 국사를 임명해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가르침을 받아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삼국시대에 처음 시작됐어요. 그 후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면서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삼고 국사와 더불어 왕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고려 제4대 광종 때에는 승려를 상대로 승과(僧科)라는 과거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때부터 국사·왕사 제도가 확실하게 정착했답니다. 불교에 대한 억압 정책을 펼친 조선 태종 때 승과가 폐지되기 전까지 유명한 국사·왕사들이 여럿 배출됐어요.

대각국사 의천

지광국사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국사로 의천과 지눌이 있습니다. 의천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 이름이 '왕후'였지요. 위로 세 명의 형들은 고려 제12대 순종, 13대 선종, 15대 숙종 임금이랍니다. 의천은 11세에 스스로 승려가 되리라 마음먹고 궁궐을 떠나 절에 들어갔어요. 더 자라서는 송나라에 유학을 가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흥왕사라는 절의 주지가 되었어요. 당시 불교는 교리를 중요시하는 교종,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이 있었는데 의천은 교종 입장에서 선종을 아우르는 천태종이라는 종파를 만들어 번성시켰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 고려시대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을 보완해 속장경이란 경전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형인 숙종에게 강력하게 건의해 화폐를 만들어 상업을 발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의천은 1101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숙종은 동생 의천이 세상을 떠나자 '대각국사(大覺國師)'라는 칭호를 내렸답니다.

보조국사 지눌

8세 나이에 승려의 길에 들어선 지눌 스님은 고려 제19대 왕 명종 때 24세의 나이로 승과에 급제했어요. 당시 불교계는 교종과 선종이 심하게 대립했고,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생겨난 대형 사찰들은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어요. 재물과 재산 늘리기에 골몰하는 승려들도 많았답니다. 지눌 스님은 이런 불교계를 비판하며 승려들이 참선과 수행에 전념하자는 운동을 벌였어요. 나아가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을 중심으로 경전 공부를 중요시하는 교종을 아우르는 조계종이라는 종파를 창시했습니다. 1210년 지눌이 세상을 떠난 지 7일 후에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죽은 사람의 공덕을 기리며 붙인 이름)와 함께 국사 칭호가 내려졌지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