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1900년 전 세운 성벽… 영국·스코틀랜드 경계선 됐죠
입력 : 2021.02.03 03:30
영국·스코틀랜드의 갈등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달 28일 스코틀랜드를 찾았어요.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겠다는 여론이 커지자 이를 잠재우려는 것이었지요.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영국 정부가 미흡하게 대처한다고 생각해 분리 독립 주장을 다시 꺼내들었죠. 게다가 스코틀랜드에선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아요. 스코틀랜드는 경제적으로 EU에 의존하는 비중이 컸거든요.
영국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뉩니다. 브리튼섬에 있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아일랜드섬에 있는 북아일랜드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에요. 네 지역 중 특히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국 대다수 국민과 자신들의 뿌리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또 수백년 전이기는 해도 과거에 잉글랜드가 자신들을 침략했다는 이유로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고해요. 스코틀랜드는 2014년엔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것에 대한 주민 투표까지 했는데 그때는 55%가 반대해 독립이 무산됐지요. 오늘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어떤 관계였는지 살펴볼게요.
로마가 1900년 전 세운 120㎞ 성벽
브리튼섬에 있는 세 지역 중 웨일스와 잉글랜드는 1세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어요. 하지만 북부인 스코틀랜드 지역은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독립을 지켰습니다. 로마는 122년 스코틀랜드를 경계로 120여㎞에 달하는 성벽을 지었어요.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 '하드리아누스 성벽'이라고 불러요. 이 성벽은 지금까지도 남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영국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뉩니다. 브리튼섬에 있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아일랜드섬에 있는 북아일랜드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에요. 네 지역 중 특히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국 대다수 국민과 자신들의 뿌리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또 수백년 전이기는 해도 과거에 잉글랜드가 자신들을 침략했다는 이유로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고해요. 스코틀랜드는 2014년엔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것에 대한 주민 투표까지 했는데 그때는 55%가 반대해 독립이 무산됐지요. 오늘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어떤 관계였는지 살펴볼게요.
로마가 1900년 전 세운 120㎞ 성벽
브리튼섬에 있는 세 지역 중 웨일스와 잉글랜드는 1세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어요. 하지만 북부인 스코틀랜드 지역은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독립을 지켰습니다. 로마는 122년 스코틀랜드를 경계로 120여㎞에 달하는 성벽을 지었어요.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 '하드리아누스 성벽'이라고 불러요. 이 성벽은 지금까지도 남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 ▲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를 기리는 기념비와 브리튼섬을 가로지르는 하드리아누스 성벽 유적입니다(왼쪽부터). /위키피디아
스코틀랜드의 독립과 통합
상황은 1297년 반전됐어요.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월리스는 잉글랜드군이 스털링 다리를 건널 때 고지대에서 창을 던지며 습격했고 5000여 명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뒀어요.
월리스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으로 칭송받아요. 이후 영국 군대를 스코틀랜드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과정을 거치며 1328년 두 국가 간 조약이 체결되면서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완전히 쟁취합니다.
두 나라는 때때로 왕족들끼리 결혼해 동맹 관계를 맺었어요. 그런데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후계자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잉글랜드의 왕관은 혈연 관계에 있던 스코틀랜드 국왕이 차지했어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같은 군주의 통치를 받는 시대가 된 거죠. 1707년 두 나라는 연합법을 제정해 단일 의회를 만들어 마침내 연합왕국으로 새롭게 태어났답니다.
분리 독립 요구하는 스코틀랜드
한 몸이 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함께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어요. 그러나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강한 잉글랜드가 영국의 권력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는 분리 독립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1967년 발견된 북해 유전의 90%가 스코틀랜드의 영역에 있는데도 영국 중앙 정부가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갔어요. 분리 독립주의자들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하면 이익을 독점할 수 있고 복지 수준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지요.
과거 침략에 대한 민족적인 반감도 있다고 합니다. 2014년은 스코틀랜드가 독립전쟁 당시 대승을 거둔 베녹번 전투의 700주년이었기 때문에 분리 독립 분위기가 한창 고조됐어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분리 독립 찬반을 묻는 투표에서 '영국에 그대로 남자'는 의견이 더 많았지요. 그러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다시 분리 독립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