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석회동굴 습기가 4만년 전 벽화 코팅해 보호했죠

입력 : 2021.02.02 03:30

고대 동굴 벽화 보존의 비밀

인도네시아에서 약 4만5000여 년 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벽화가 발견됐습니다. 이 동굴 벽화 얘기는 지난달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시스에 실렸는데 지금까지 인류가 그린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만 년이 흘렀는데도 벽화에 그려진 당시 동물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해요. 이런 동굴 벽화가 어떻게 오랜 세월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선명한 색채와 또렷한 동물 그림

최초로 발견된 동굴 벽화는 알타미라(Altamira) 벽화입니다. 1879년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역에서 발견됐죠. 이 동굴 벽화는 기원전 3만~2만5000년인 후기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들소나 말, 사슴, 멧돼지 등 여러 동물이 다양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고, 사람 손바닥과 직선과 도형 모양의 기하학적인 기호가 남아있었어요. 동물들 형태나 명암, 원근감은 물론 갈색, 노랑, 검정 등 다채로운 색깔이 아름답고 선명하게 남아있었어요. 보존 상태가 얼마나 좋았는지 처음에는 가짜 그림으로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였어요.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1940년에는 프랑스 남서쪽 도르도뉴 지역에서 보물을 찾던 10대 청소년들이 동굴 속에서 벽화를 발견했어요. 라스코 동굴 벽화인데요. 이 벽화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후인 기원전 1만7000~1만5000년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붉은색과 주황색, 검은색 등 풍부한 색채로 표현된 동물들이 굉장히 또렷하게 남아있고, 그중에서도 5m가 넘는 크기의 검은 소 네 마리 그림은 현재까지 발견된 구석기 시대 그림 중 가장 커요.

1994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 강 유역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가 추가로 발견됐어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쇼베-퐁다르크 동굴 벽화라고 부르는데요. 약 3만2000~3만 년 전 작품으로 밝혀졌어요. 이 동굴은 약 2000년 전에 암벽 붕괴로 입구가 막혀 1994년 전까지 봉인된 상태였어요. 벽화에 선명한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고 그림에 나타난 예술적 기법과 그 수준이 매우 높아 고고학적·고생물학적 가치를 인정받았죠.

입으로 액체 뿌려 그린 손자국

이번에 발견된 동굴 벽화는 호주 그리피스대 애덤 브럼 교수 연구팀과 인도네시아 공동 연구팀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레앙 테동게 동굴에서 찾아냈어요. 가로 136㎝, 세로 54㎝ 크기 벽화에 술라웨시섬 토종 멧돼지 그림과 사람의 손도장 등이 그려져 있었어요. 연구팀은 과거 인류가 동굴 벽에 손을 대고 그 위에 색채를 섞은 액체를 입으로 뿜어 벽화에 손자국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는 지금 인도네시아 섬 지역에 당시 현생 인류가 살았다는 증거이며 과거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6만5000년 전 호주로 이주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만약 벽화에 입으로 액체를 뿌릴 때 섞여 나온 침이 벽화에 묻었고 거기에서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다면 누가 벽화를 그렸는지 알 수도 있다고 해요.

벽화가 선명하게 남은 이유

지금까지 발견된 동굴 벽화를 보면 그림이 또렷하게 남아있고 다양하게 사용된 색소도 매우 선명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미술 도구가 없었는데도 어떻게 다양한 색깔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벽화가 발견된 동굴들은 과거 산사태, 화산 폭발 등에 묻혀 입구가 막힌 채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오랜 세월 유지됐어요. 기후나 온도, 습도 등 환경 변화에서 안전할 수 있었던 거죠.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길거리 음식을 팔던 식당이 발굴됐는데, 판매대로 추정되는 곳 벽면에 오리와 수탉 등 식재료로 보이는 그림들이 생생하게 남아있었어요. 화산 폭발로 도시가 순식간에 묻히면서 그림이 오랫동안 보존됐어요.

벽화를 그렸던 재료도 영향을 미쳐요. 구석기 시대 인류는 뾰족한 돌이나 나무, 손가락, 모피 등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흙, 돌 등으로 색을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진흙이나 황토로 노란색을 만들고, 붉은색은 암석에 있는 철 성분이 산소와 만나 빨간색을 띠는 산화철 등을 섞어서 표현했어요. 검은색은 나무를 구워서 만든 목탄 등을 이용했죠. 이들의 금속 성분이 자체적으로 가진 고유의 색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나타났죠. 또한 색소를 칠할 때도 자연에서 얻어낸 재료를 곱게 갈아 물이나 동물의 지방에 섞고 불로 가열해 벽 표면에 색소가 잘 착색될 수 있게 했습니다. 색소를 섞은 액체를 입에 물었다가 직접 뱉거나 빨대처럼 생긴 식물, 뼈를 이용해서 분사하는 등 색소가 동굴 벽에 잘 달라붙어 있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다고 해요.

마지막 비밀은 동굴 성분입니다. 벽화는 주로 석회동굴에서 발견됐어요. 석회동굴은 석회암 지대에서 지하수가 석회암을 녹여서 생긴 동굴입니다. 석회암을 이루는 물질은 탄산칼슘인데요. 석회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액체가 바로 탄산수소칼슘수용액이고, 떨어진 액체가 다시 굳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석순과 종유석이지요. 이런 일이 동굴 벽화에서도 일어납니다. 천장에서 떨어지거나 벽에서 스며 나온 석회동굴 내부의 습기가 벽화의 표면에 맺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굳어지는데, 이때 벽화가 마치 코팅이 되는 것처럼 굳게 됩니다. 이 과정이 오랜 세월 반복되면서 벽화 표면에는 견고한 얇은 막이 형성됐고 그 안의 그림이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겁니다.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