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제트 전투기 완벽 제압했대요

입력 : 2021.01.28 03:30

터스키기 비행대

지난 4일 미국 조폐국이 새롭게 발행한 25센트 동전의 뒷면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공군 장병이 등장했습니다. 미 조폐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전체주의)과 싸운 이들의 영웅적인 행동과 성취를 기리기 위해 무명의 용사를 동전에 담았다"고 밝혔어요. 이 장병이 속했던 흑인 공군부대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 있는 터스키기라는 작은 도시에서 탄생해 '터스키기 에어맨'이라고도 불립니다. 인종차별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흑인들은 어떻게 조종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흑인도 조종사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백인만 조종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은 전투기 같은 복잡한 병기를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고, 전쟁에 참가한 흑인 대부분은 수송, 취사 같은 비전투 임무만 수행했죠. 이런 편견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은 조종사의 꿈을 키워갔고, 각종 민권단체와 흑인 언론은 "흑인에게도 조종사 훈련의 기회를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어요. 마침내 1939년 4월 3일 의회에서 흑인 조종사 훈련을 위한 기금을 만드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에 따라 터스키기에 흑인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한 기지를 만들고 비행 훈련을 시작했어요.
1941년 터스키기 부대 첫 흑인 조종사 교육생들의 모습입니다. /위키피디아
1941년 터스키기 부대 첫 흑인 조종사 교육생들의 모습입니다. /위키피디아
1941년 3월 당시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흑인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흑인 조종사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죠. 터스키기 비행대의 정식 명칭은 '99전투비행대'로, 1941년 첫 교육생 13명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총 흑인 파일럿 1000여 명과 지상 요원 1만5000여 명을 배출했어요.

"백인과 동등하게 싸우게 해달라"

99전투비행대는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1943년 북아프리카로 이동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됐어요. 여기에서 처음으로 적기를 격추하는 공적을 세웠고, 부대 표창까지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중전 임무가 주어졌던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어요. 백인 지휘부는 흑인 조종사들에게 주로 지상군을 지원하는 임무만 줬고, 흑인 조종사들은 성과를 올릴 만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았죠. 이 때문에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이 비행대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문회까지 열었어요. 이때 백인 지휘부에 맞서 싸운 인물이 99전투비행대의 대대장이었던 벤저민 데이비스 2세 중령이었어요. 최초의 흑인 전투기 조종사 후보생 13명 중 1명이었던 그는 99전투비행대의 해체를 반대하며 하원 군사위원회에 "백인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을 전했어요. 결국 비행대는 해체를 면할 수 있었어요.

편견의 틀을 깨는 활약

1944년 6월엔 99전투비행대가 101, 301, 302전투비행대와 통합돼 '332전투비행단'으로 재탄생했어요. 이 부대가 보유했던 P-51 머스탱 전투기는 이번에 새로 발행된 동전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로 이들의 상징과 같습니다. 이들은 P-51 머스탱 전투기를 타고 독일 공군과 맞붙었어요. 백인 조종사들은 이들을 '붉은 꼬리의 천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P-51 머스탱 전투기의 꼬리날개가 붉은색이었기 때문이었죠.

1945년 베를린 폭격 호위 임무 때 그들이 세운 전공은 '흑인은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다'는 초기의 편견을 완전히 깼어요. 당시 P-51 머스탱 전투기보다 시속이 무려 160km나 빨랐던 독일 제트 전투기 Me262를 3대나 격추하는 성과를 거뒀죠. 당일 독일 공군은 공중전에서 총 4대의 Me262를 잃었는데 그중 3대가 332전투비행단에 격추당했다고 해요. 332전투비행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400대가 넘는 적군의 비행기를 손상시키고, 1000여 대의 철도와 수송차량을 폭파했어요. 마침내 2007년 3월, 미 의회는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의회 골드 메달'을 비행대원에게 수여하며 그들의 공을 국가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