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바다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어선(漁船)이 쉬지 않고 물고기를 잡습니다. 전 세계 어선 수는 456만척에 달해요. 그런데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일하다 보니 감시하는 눈이 없어서인지 어선에서 일하는 선원들 중에는 거의 노예처럼 학대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하루 18시간을 일해야 하고, 월급도 제대로 안 주며 말을 안 들으면 때리고 몸이 아파도 치료도 안 해주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해요. 보다 못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인공위성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전 세계 어선 중 14~26%가량 배에서 강제 노동이 일어난다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많은 어선 내부를 다 눈으로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강제 노동이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요.

◇강제 노역선 어떻게 구별했나

연구를 한 곳은 미국 샌타바버라대(UCSB) 해양과학연구소 가빈 맥도널드 교수팀과 민간단체(NGO) 글로벌어업감시(Global Fishing Watch)였습니다. 이들은 먼저 과거 노동 학대가 일어났던 선박들 22척 움직임을 데이터로 정리해 특징을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선박들과 다른 움직임이 발견됐어요. 예를 들면 고기를 잡는 날이 많았고, 잡는 시간도 길었습니다. 전 세계 바다의 64%를 차지하는 공해(公海)에 나가서 자주 작업하고, 다른 선박보다 항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조업하면서 배 엔진 출력도 높았다고 합니다. 이런 게 모두 27가지나 됐는데 이를 AI에 입력한 다음, 2012~2018년 전 세계를 돌아다닌 어선 1만6000척을 분석해봤습니다.

이 배들이 어떻게 돌아다니는지는 환경 관련 위성사진 분석 단체 스카이트루스와 구글 등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조사에 쓴 인공위성에는 몇 가지 첨단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먼저 배에 다른 배와 부딪히는 걸 막기 위해 지금 위치를 항상 송신하는 '자동 식별 시스템(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이 있어요. 이 시스템은 선박 이름과 속력 등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해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더불어 위성 레이더 기술도 썼습니다. 3개 위성 레이더를 이용해 하늘에서 바다로 차례차례 전파를 쏜 뒤 이 전파가 배에 부딪혀서 다시 돌아오는 시간 차이를 이용해 선박 위치와 크기,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시스템이죠.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비슷합니다. 구름이 낀 흐린 날에도 어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이 밖에도 고해상도 '광학 이미지' 기술도 들어 있고, 밤에는 선박 불빛을 통해 위치를 잡아내는 '고감도 적외선 감지' 기술도 있습니다. 거의 물 샐 틈 없이 어선들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는 셈입니다.

◇오징어·참치잡이 배가 많아

그다음 AI가 1만6000척 움직임을 열심히 분석해봤더니 최소 2300척, 최대 4200척(14∼26%)에서 강제 노동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뭔가 그 전에 문제를 일으킨 배들과 비슷한 식으로 고기를 잡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어선들에 적게는 5만7000명, 많게는 10만명 선원이 탔을 걸로 추산됐으니 어마어마한 인원이죠. 연구팀은 이 결과가 93% 정확하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강제 노동이 많이 일어나는 배는 오징어잡이 어선이 많다고 합니다. 오징어잡이는 보통 긴 낚싯줄에 여러 개 낚시를 달아 물속에 늘어뜨리는 연승(延繩)을 많이 쓰는데, 이런 연승 어선은 별다른 설비가 필요 없어 오래된 배가 많기 때문에 일하는 환경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해요. 더구나 오징어잡이는 주로 밤에 하기 때문에 더 열악하죠. 연구팀은 오징어잡이 어선 중 70∼80%가 강제 노동이 의심된다고 봤어요. 역시 연승 어선인 참치잡이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바다 위에서 우리나라 군에 잡혔다가 논란 끝에 다시 북한으로 추방된 선원들도 오징어잡이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사실 연승 어선 중 강제 노동이 많이 일어나는 데는 중국과 대만 배가 제일 많아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고 일본도 꽤 된다고 합니다. 이번 분석을 위해 기초 자료로 쓰였던, 강제 노동이 적발됐던 22척 중 7척은 한국 배였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학술지(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내긴 했지만 강제 노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한 배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 무슨 배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더 정확도를 높인 다음 알려줄 거라고 했다네요.

◇동해에서 몰래 오징어 잡는 중국

이번 연구에 참여한 글로벌어업감시는 강제 노동 선박 말고도 다른 조사도 했습니다. 역시 인공위성을 활용해 한국 해양수산개발원, 미국 캘리포니아대, 일본 수산연구교육기구와 함께 2017~2018년 북한 동해상에서 중국 어선들 움직임을 살펴본 거죠. 그랬더니 중국 배들이 불법으로 오징어를 잡아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 동해는 유엔 제재로 다른 나라 선박이 못 들어가는데 중국 배들은 2년 동안 1600척이나 몰래 들어갔다고 해요. 거기서 오징어 16만4000t, 4억4000만달러(약 4870억원)어치를 잡는 바람에 북한 배들은 오징어가 없어 러시아 연안까지 가야 하는 신세가 됐구요. 이렇게 중국 배들이 오징어를 마구 잡는 바람에 북한은 물론, 한국과 일본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니 뭔가 대책이 필요하겠죠.

이제 바다에도 이렇게 인공위성과 AI 같은 기술이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으니 앞으로 새로운 변화가 생겨날 거라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