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유대인이 겪은 홀로코스트를 공간으로 표현했어요
입력 : 2021.01.26 03:30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1월 27일은 유엔(UN·국제연합)이 정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입니다. 홀로코스트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대학살을 뜻해요. 이 대학살에서 유대인 약 600만명이 죽었어요. 현재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곳곳에는 유대인 박물관이 세워졌는데요. 독일 수도에 있는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파격적인 건축과 극적인 공간 경험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하는 건축 명소입니다.
- ▲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전경이에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신관 외부엔 출입구가 없습니다. 구관으로 먼저 입장한 후 급격히 경사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 긴 복도를 지나야 신관에 다다를 수 있어요. 갑작스레 주변 환경을 바꾸며 방문객이 박물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건축적 장치입니다. 신관에 도착한 사람들은 비스듬히 뒤틀린 세 개의 복도를 마주칩니다. '축(axis)'이라고 부르는 복도들은 독일계 유대인이 2000년간 겪은 삶의 궤적을 상징해요. 각 복도를 따라가면 전시, 이민,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공간으로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공간감이 왜곡되곤 해요. 이런 내부의 선을 통해 고난을 헤치며 끈질기게 이어온 유대인의 지속성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신관 내부엔 휑한 공간이 많습니다. 건축에선 의도적으로 만든 빈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하는데요. 보이드를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즐거움부터 슬픔까지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움직일 수 있어요.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높은 공간 속에 창문을 최대한 없애고 대신 공간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고난과 희망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인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런 의도가 극대화된 곳이 홀로코스트 타워입니다. 철문이 닫히면 공간은 곧 막막하고 어두워집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22m 높이 천장의 작은 틈에서 빛이 스며들어요.
박물관의 또 다른 명소는 '메모리 보이드'입니다. 이스라엘 출신 예술가 메나슈 카디시만은 눈, 코, 입처럼 구멍을 뚫어 마치 사람 얼굴을 연상시키는 동그란 금속판 1만장을 만들어 메모리 보이드의 바닥에 깔았습니다. 작품명은 히브리어로 낙엽을 뜻하는 '샬레케트'예요. 카디시만은 대학살 기간에 사망한 유대인뿐 아니라 폭력과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