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화폐로 세상 읽기] 중남미 최초로 노벨문학상 받은 시인… 어린이 향한 따뜻한 사랑을 시에 담아

입력 : 2021.01.25 03:30

칠레 5000페소에 그려진 미스트랄

칠레 5000페소(약 8150원·사진)에는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스트랄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여 사유로 "강렬한 감정에 기반한 그녀의 서정시는 시인의 이름을 라틴 아메리카 사회 전체의 이상과 열망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밝혔어요. 그녀의 시가 곧 라틴 아메리카의 이상주의를 대변한다는 평가였죠.
/세계화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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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랄은 1889년 칠레 북부에 있는 비쿠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세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열다섯 살에 해변 마을에서 교사 보조원을 하며 가난한 가족을 돌보고 살았습니다. 그녀는 틈틈이 시를 써 지역 신문이나 잡지에 원고를 보냈는데요. 이때 본명인 루실라 알카야가 대신 사용했던 이름이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었어요. 그녀가 좋아했던 이탈리아의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와 프랑스 시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에게서 따왔죠.

1914년 그녀는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 예술가 작가협회가 주최한 백일장에서 '죽음의 소네트'라는 시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시는 그녀가 젊은 시절 사랑하는 애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충격과 슬픔을 승화한 작품이에요.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면서 결혼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해요.

미스트랄은 1924년 어린이를 위한 동시 모음집 '부드러움'을 발표했어요.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노래하고 어린이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담았죠. 이 시들은 아직도 많은 중남미 어린이들이 즐겨 외우고 노래로 부르고 있다고 해요. 미스트랄은 어린이들이 주로 읽는 '빨간 모자'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동화를 시로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미스트랄은 시인이자 칠레 외교관으로 활동했어요. 그녀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지위 향상과 환경 개선을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어요. 그녀의 작품 속에는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마음과 나아가 동포, 인류를 향한 폭넓은 관심과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죠. 1945년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그녀는 "아마도 내가 여성과 어린이를 대표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어요.

그녀는 1957년 1월 10일 뉴욕의 햄스테드에서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9일 후 칠레로 돌아왔고 칠레 정부는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언했어요. 수십만 명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죠. 1995년 칠레 정부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노벨상 수상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메달'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문학적 업적을 세운 작가들에게 수여하고 있습니다.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