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두 살 때 연주 시작해 일흔 넘어서도 실력 잃지 않았죠
입력 : 2021.01.18 03:30
카미유 생상스
2021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올해를 기념할 만한 음악가가 많은데요. 그중 프랑스의 낭만파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는 올해로 서거 100주년이 됐습니다. 생상스는 피아노와 오르간(건반과 페달을 이용해 공기를 불어넣어 소리내는 악기)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연주가이자, 아름다운 첼로 선율의 명곡 '백조'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입니다.
- ▲ 카미유 생상스 /위키피디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생상스는 어려서부터 탁월한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두 살에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네 살에 첫 작품을 썼으니 믿기 어려울 정도죠. 그는 열 살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는데, 청중이 앙코르를 요구하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 아무 곡이나 연주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고 합니다. 파리 음악원을 졸업하고 피아니스트와 오르가니스트(오르간 연주자)로 활약하던 생상스는 1857년 마들렌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돼 20년간 일했습니다. 1871년에는 당시 음악 전반에 걸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독일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브리엘 포레, 세자르 프랑크, 쥘 마스네 등과 함께 국립 음악 협회를 설립했고, 프랑스 고유의 색채를 지닌 음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생상스는 뛰어난 천재답게 다방면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오페라·교향곡·협주곡·실내악·독주곡·합창곡 등을 포함, 무려 400곡이 넘습니다. 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지만, 포레를 비롯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을 길러냈고, 포레에게 배운 모리스 라벨의 작품들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표 작품은 '죽음의 무도'
생상스 작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은 아마도 '죽음의 무도'일 것 같아요. 1875년 발표된 이 곡은 시인 앙리 카잘리스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교향시입니다. 교향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으로 대상을 자유롭게 묘사하는 오케스트라곡을 뜻해요. 2009년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쇼트 프로그램에 이 음악을 배경으로 연기해 대회 우승을 차지했었죠. 자정을 알리는 12번의 종소리와 함께 무덤에서 죽은 이들이 해골의 모습으로 깨어나 무도회를 펼치고 새벽 닭 울음소리와 함께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기괴하고 으스스하지만 매력적입니다. 1886년 작곡된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은 '오르간' 이라는 부제로 불리는데, 역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크게 두 악장으로 나뉘는 이 교향곡은 파이프 오르간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죠. 장엄한 분위기와 풍성한 화음, 부드럽고 우아하게 흐르는 선율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듯 울리는 거대한 오르간의 음향이 듣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 ▲ 카미유 생상스가 1913년 송년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위키피디아
뛰어난 두뇌를 지녔던 생상스였지만, 자신의 작품 중 어떤 곡이 오래 사랑받을지 예측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어요.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음악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 '동물의 사육제'(1886)가 그렇습니다. 모두 14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자·닭·캥거루·뻐꾸기 등 흥미로운 동물들의 동작이나 소리를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그려내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죠. 하지만 작품이 지나치게 가볍고 진지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생상스는 13번째 곡 '백조'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출판하지 않았죠. 결국 이 곡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일 년 후인 1922년 출판됐습니다.
오페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삼손과 델릴라' 역시 하마터면 빛을 보지 못할 뻔했던 작품입니다. 성서 속 유명한 삼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오페라는 1870년 2막이 먼저 완성됐지만, 음악을 들은 주변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낙담한 생상스는 작품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1872년 선배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의 조언으로 다시 힘을 내 1877년에 전 3막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죠. 극 중 델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수많은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 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입니다.
생상스는 노년까지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미국 연주 여행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죠. 동영상 사이트를 검색하면 1914년 생상스가 일흔아홉 살 때 피아노를 연주한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