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공격 않고 방어만… '파란 모자' 쓰고 평화 지켜요

입력 : 2021.01.14 03:30

유엔 평화유지군

지난 2일(현지 시각) '유엔(UN·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브라이언 어커트 전 유엔 사무차장이 미국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엔의 창립 멤버였으며 1986년 은퇴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유엔에서 활동했어요. 세계 평화 유지에 크게 기여한 전설적인 외교관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매년 유엔 영국협회에서는 유엔에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상을 수여하는데 그 상의 이름이 '브라이언 어커트상'입니다.

유엔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막기 위해 무력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평화유지군을 결성하고 파견할 수 있습니다. 유엔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파견한 군대로 이루어집니다. 군대 파견에 드는 비용은 유엔 회원국들이 나눠서 냅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지휘권을 갖고 있으며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 평화 회복을 위한 방어 임무를 제외하고는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브라이언 어커트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구상하고 운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는데요. 유엔 평화유지군은 어떤 계기로 생겼을까요?

유엔의 탄생

브라이언 어커트는 영국 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육군 장교 출신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4년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은 미국 워싱턴 교외에서 종전 후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기구를 설립하기로 합의해요. 이때의 결정 사항을 바탕으로 이듬해 유엔 헌장이 마련됐고, 50국이 회원으로 서명하면서 유엔이 탄생했습니다. 브라이언 어커트는 유엔 헌장을 작성할 때부터 준비 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2008년 유엔 평화유지군이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행진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2008년 유엔 평화유지군이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행진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유엔 헌장 제1조는 유엔의 존재 목적을 담고 있어요.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 국가 간 우호적 관계 발전, 인도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 등입니다. 유엔의 이전 형태인 국제연맹은 군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무력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국제 분쟁 해결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요. 유엔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군대가 필요했습니다.

국제 분쟁을 막는 평화유지군

평화유지군은 냉전 중 국제 분쟁의 위기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 선포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집트 등의 아랍 국가 사이에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어요. 1949년 국제연합은 이스라엘·아랍 정전(停戰) 협정의 이행을 감독하기 위해 군사적 성격을 지닌 유엔 휴전감시단을 파견했어요.

하지만 1956년에 제2차 중동전쟁이 일어납니다.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는 이집트의 발전을 위해 나일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기를 원했고 미국은 이집트를 우방 국가로 삼기 위해 이집트에 자금을 빌려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집트가 소련이 만든 무기를 구입하자 미국은 자금 지원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나세르는 이에 분노해 자금을 구하기 위해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고 아랍 국가들과 갈등 중이던 이스라엘 선박의 통행을 금지했어요. 수에즈운하는 원래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와 이스라엘은 함께 이집트를 응징하기로 해요. 1956년에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한 사건을 제2차 중동전쟁 혹은 '수에즈 위기'라고 합니다. 이때 분쟁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의 전신(前身) 격인 '유엔수에즈사태긴급군(UNEF)'을 파견했어요. 분쟁과 관련 없는 10국에서 모집한 6000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군대였죠.

노벨 평화상 수상

브라이언은 당시 유엔 사무처장의 주요 고문으로서 평화유지군을 만드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평화유지군을 다른 군대와 구별하기 위해 군인들이 파란색 헬멧을 쓰게 했습니다. 눈에 잘 띄게 해 교전국 병사가 아닌 평화유지군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죠. 오늘날 평화유지군이 착용하는 파란색 헬멧 또는 베레모는 평화유지군의 정체성이 됐죠. 그래서 유엔 평화유지군을 '블루 헬멧'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브라이언은 은퇴할 때까지 13개의 평화 유지 작전을 지휘했으며 23국에서 1만명 병력을 모집했습니다. 평화유지군은 오늘날까지 키프로스, 레바논, 코소보, 수단 등에서 평화 유지 활동을 해 왔어요. 지금까지 약 130국이 평화 유지 작전에 군인과 민간 경찰을 투입했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국제 분쟁 해결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현재 '유엔 평화군'의 명칭은 유엔에서 평화 유지 활동을 수행하는 군대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군대를 파견해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1993년 소말리아에 상록수부대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동티모르(1999년), 레바논(2007년), 아이티(2010년) 등에서 평화 유지 활동을 수행했죠. 우리 군은 치안을 유지하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등 분쟁으로 피해를 본 현지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