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수학 산책] 만 배 커지면 새로운 이름 생겨… 제일 큰 무량수는 0이 68개

입력 : 2021.01.14 03:30

명수법

수를 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말로 부르는 방법과 숫자로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각각 명수법과 기수법이라고 해요. 명수법을 이용하면 큰 수나 작은 수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단위를 두고 이름을 붙여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단위는 일·십·백·천·만 등입니다. 예를 들어 숫자 기호로 나타낸 3230000은 3백2십3만으로 단위를 끊어 읽을 수 있습니다.

만 단위는 일만·십만·백만·천만 다음에 억이 되고, 억은 일억·십억·백억·천억 다음에 조가 되는 식으로 만 배가 될 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붙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자로 큰 단위의 숫자에 이름을 붙였는데, 1900년 이상설이 쓴 수학책 '산술신서'등에 명수법이 나와있어요. 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J), 양(穰),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수(無量數)까지 이름을 지었어요.
이상설이 쓴 산술신서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상설이 쓴 산술신서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각 수에 붙은 이름에는 뜻이 있습니다. 이 중 항하사의 뜻을 살펴보면, '항하'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고 '사'는 모래를 뜻합니다. 즉 항하사는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수가 크다는 뜻이에요. 항하사보다 큰 단위는 모두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아승기는 '아주 오랜 시간'을 뜻하고 불가사의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해요. 뜻을 들어보니 얼마나 큰 수인지 감이 오시나요? 무량수를 세어보면 69자리 숫자입니다. 0이 68개나 있는 거죠.

서양에서는 수를 읽는 방법이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는 만 배마다 새로운 단위를 사용하지만, 미국 등 서양에서는 천 배마다 새로운 단위를 사용해요. 천은 사우전드(thousand), 백만은 밀리언(million), 10억은 빌리언(billion) 등으로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수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1938년 미국의 수학자 에드워드 카스너는 아홉 살이 된 조카 밀턴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수를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지 물어봤습니다. 밀턴은 '구골(googol)'이라고 답했어요. 카스너가 밀턴에게 구골이 어느 정도 큰 수인지 묻자 밀턴은 "수를 쓸 때 손이 아파 더 이상 쓸 수 없는 정도의 수"라며 "1 다음에 0이 100개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카스너는 구골에서 착안해 또 하나의 새로운 단위인 '구골플렉스(googolplex)'를 만들었습니다. 카스너는 처음에 구골플렉스를 '1 다음에 0을 쓰다가 지치는 수'라고 정의했어요. 후에 1뒤에 0이 1구골만큼 있는 수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 '구글'의 원래 이름도 구골이었습니다. 구골만큼 인터넷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자료를 모두 검색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었죠. 그런데 회사의 이름을 등록하러 간 사람이 구골의 알파벳 철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구글이 됐다고 합니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