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이야기] 맛과 향을 한껏 높이는 검은 열매… 옛날엔 금만큼 비쌌어요

입력 : 2021.01.14 03:30

후추

후추는 겨울철 따끈한 국이나 수프를 먹을 때, 솔솔 뿌려 풍미를 더 하는 익숙한 향신료입니다. 흙빛의 후춧가루를 뿌리거나 동그란 알갱이를 쓱쓱 갈아 넣을 수 있죠. 후추가 들어간 음식은 알싸한 향기가 납니다.

후추는 본래 칡이나 등나무처럼 가는 줄기로 벽이나 막대기를 타고 올라가며 자라는 덩굴성 식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키가 4m까지 자라지만 줄기가 아주 가는 덩굴을 만들며 뻗어나가요. 잎은 길게는 손가락 길이 정도까진 자라지만 가장자리가 밋밋합니다. 그리고 봄에서 여름에 걸쳐 피는 꽃은 흰색이나 분홍색을 보이는데, 크기가 후추 열매만큼이나 작아요. 가을부터 가지에 맺히는 열매가 바로 우리가 흔히 향신료로 알고 있는 후추입니다. 나무보다 열매가 더 유명해서일까요. 후추 열매를 줄여 후추라고도 부릅니다.
후추 열매의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후추 열매의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 후추 열매가 원래는 검은색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나요? 후추의 열매는 빨간색입니다. 후추는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습니다. 지름이 5㎜ 정도인 열매 알알이 동그랗게 수십 개가 모여 하나의 길쭉한 무리를 만들어내지요. 촘촘히 붙어 몸집을 불린 열매 무리가 무거워서인지, 줄기가 아래로 향해 축축 처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초록색이던 알이 점점 커지면서 빨간색을 띠는데요. 익어가는 과정에서는 어떤 열매는 빨간색으로, 어떤 열매는 초록색으로 남아 알록달록 장관을 만들어냅니다. 후추 열매는 더 익으면 검붉은 색에 가까워집니다.

우리가 먹는 후추는 어떻게 검은색이 되는 걸까요? 후추는 향신료로 만들기 위해 가공 과정을 거치는데요. 녹색의 설익은 후추를 따서 뜨거운 물에 데치고 건조기를 이용해 말리면 점점 검은색을 띠게 됩니다. 열매의 수분이 말라붙으면서 표면이 쪼글쪼글하고 색이 검은 통후추의 모양이 되죠.

후추는 불과 몇 백 년 전에는 금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던 식물입니다. 남인도가 원산지인 아열대 식물인데요. 후추는 조금만 첨가하면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게 해 주는 향신료였고, 당시 귀족의 과시 수단이었습니다. 후추의 몸값은 점점 치솟았죠. 후추는 기후가 서늘한 유럽에서는 자랄 수가 없었고, 아주 먼 곳에서 험한 경로를 거쳐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아주 비쌌습니다. 후추를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배를 댔던 것도, 사실은 후추를 찾으러 갔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제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후추를 재배해 생산량이 많이 늘어났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향신료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실에서 후추를 키웁니다. 대부분 식물원 등에서 관상용으로 재배하죠.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후추와 같은 과에 속하는 '후추등'이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덩굴이나 잎의 모양, 열매까지 후추와 똑 닮은 이 식물은 우리나라 제주도 해안가 기후에서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추위에 강합니다. 예전에는 후추를 대신해서 후추등의 열매를 먹기도했다고 합니다.



최새미 식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