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미국 빨간색'은 '일본 빨간색'과 같을까?… 전 세계 표준 색상 만들어

입력 : 2021.01.12 03:30

팬톤

팬톤이 선정한‘2021년 올해의 색’입니다. /팬톤
팬톤이 선정한‘2021년 올해의 색’입니다. /팬톤
세계적인 색채 연구소이자 색상 회사인 팬톤이 '2021년 올해의 색'을 발표했습니다. 팬톤이 선정한 색은 두 가지인데요. 자연스러운 회색빛의 '얼티메이트 그레이'와 화사한 노란빛의 '일루미네이팅'입니다. 영원히 계속되고 견고하며 신뢰를 주는 얼티메이트 그레이와 활기차고 따뜻하며 낙천적인 느낌의 일루미네이팅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겪고 있는 세계인에게 희망과 격려, 회복의 기운을 준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팬톤은 2000년부터 매년 올해의 색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예술, 패션, 스포츠 등 각 분야에 대한 조사와 시대정신을 감안해 색깔을 선정해요. 이 올해의 색은 패션, 실내장식, 화장품, 출판, 영상, 가전 기기, 생활 소비재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요. 오늘은 팬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떤 색을 가리켜 이름을 정해도 사람마다 색깔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빨간 장미꽃을 보고 장미색이라고 말해도 그 색감에 대해 빨갛다, 붉다, 검붉다, 자홍색이다, 핏빛이다 등 다양하게 표현하죠. 팬톤은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색상을 시스템화해 모두가 같은 색으로 인정하는 표준 색상을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색채 산업의 현대적 기틀을 확립했죠.

팬톤의 창립자인 로런스 허버트는 화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6·25전쟁 참전 용사인데요. 제대 후 1956년 작은 광고 회사에서 인쇄기에 쓰이는 컬러 잉크 생산과 재고를 담당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는 색의 세계에 빠지면서 인생이 마법처럼 바뀌었습니다. 허버트는 색깔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빨간색이라도 각자 빨간 정도를 다르게 인식해 뉴욕에서 인쇄한 빨간색과 도쿄에서 인쇄한 빨간색이 약간 달랐는데, 이젠 팬톤에서 규정한 빨간색으로 통일되면서 뉴욕이나 도쿄나 팬톤 색 기준에 따라 같은 색을 인쇄할 수 있게 된거죠.

팬톤 시스템은 색상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늘 불화가 끊이지 않던 인쇄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혁명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주요 잉크 생산 업체 21곳 중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사용료를 내고 이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팬톤은 1964년 실제 색을 확인하는 부채 모양의 '색 일람표'를 만들었습니다. 이 표는 디자인 업계와 인쇄 업체 등 색을 다루는 사람들의 만국 공용어가 됐어요.

개인용 컴퓨터가 발명되자 팬톤은 기존 시스템을 디지털로 확장했고 이는 디지털 프린터까지 연결됐죠. 이후 팬톤 색은 건축, 섬유, 의류, 미용, 광고, 플라스틱, 푸드, 화장품, 색소 등 색채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동일하게 구현할 수 있는 색 체계로 발전했습니다. 현재 팬톤 색은 기본 색 총 1757가지를 중심으로 응용 색까지 합치면 총 1만 가지가 넘어요.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아무도 색을 소유하진 못하지만, 팬톤은 색을 규정하는 기준을 소유했다"고 했어요.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