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삶의 역경에 맞서는 인간의 숭고함 담겨있어요
그리스 비극
기원전 5세기에 피어난 비극의 정신을 꽃피운 이는 호메로스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호메로스가 집대성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최초의 문학이자 비극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명맥은 여류 시인 사포의 서정시로 이어져서 마침내 비극이 탄생했습니다.
◇삶의 고난을 깊이 있는 성찰로
그리스 비극의 전성기는 기원전 5세기입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그리스 비극의 3대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예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그들이죠. 본격적으로 시작된 비극 관람은 당시 아테네 시민들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신과 운명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약한 영웅의 모습에게 자신을 이입했어요. 또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울고 웃었어요. 비참한 운명을 맞는 비극의 주인공을 통해 마음속에서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생겨나고 감정을 발산해 쾌락과 심리적 안정을 얻은 거죠.
- ▲ 1869년 작‘아가멤논 무덤 옆의 엘렉트라’와 1808년 작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입니다.(왼쪽부터)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비극을 보고 운명과 대적하다가 비록 지금 고꾸라지더라도 언젠가는 운명을 넘어서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희극보다 비극이 먼저 시작되고 번성한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은 삶에서 닥치는 고난을 깊이 있는 성찰로 담아낸 비극을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존엄
비극은 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영웅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영웅이 주인공이라니 그 탁월한 능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맺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러면 비극이 아니겠죠. 비극 속의 주인공들은 사회적인 사명과 책임감을 짊어지고 충돌하다가 결국 빠져나갈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죠.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비범한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 삶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의식을 일깨웠습니다. 한낱 인간은 운명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 지배를 받는 존재이지만, 위대함과 존엄성으로 삶과 죽음을 직면해요. 그러면서 "이제 신과 운명의 지배에 무릎 꿇지 않겠다" "비록 실수를 반복하고, 결함을 드러내지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더라도 운명에 맞서겠다"고 외치죠.비극의 결말이 항상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을 보면 가족이 서로 죽고 죽이는 피 튀기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오레스테스가 구원을 받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희극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레스테스가 용서를 받긴 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에 죽고, 어머니는 자기가 죽인 비극의 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3대 비극 작가가 주목한 엘렉트라
비극 3대 작가 중 소포클레스 작품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오이디푸스'입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아버지를 죽인 후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눈을 찌른 비운의 왕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입니다. 정신 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이 오래된 이야기의 주인공을 불러내 아들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버지를 질투하는 마음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습니다.
프로이트는 아들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면 딸에게는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품은 딸이 어머니에게 경쟁 의식을 가지고 증오하는 심리를 의미합니다. 엘렉트라는 비극 작가 3명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여성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아이스킬로스의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조연 격으로 출연해 남동생에게 복수를 맡기고 퇴장하지만,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해요. 에우리피데스도 '엘렉트라'라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썼습니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엘렉트라의 차이점은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가 너무 착하다는 거예요. 어머니에 대한 들끓는 분노로 복수의 여신이 되는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대신,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는 가난한 농부와 결혼해 자신의 동생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하는 나약한 여인상으로 등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