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59년 동안 고쳐 쓴 역사… 고려 500년 전통과 문화 담아

입력 : 2021.01.07 03:30

고려사

지난달 문화재청이 고려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인 '고려사'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한다고 예고했습니다. 고려시대를 다룬 역사책 중에는 처음입니다. 고려의 역사에 대한 책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지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태종은 이를 고쳐 다시 펴내라고 했고, 세종 때는 '고려사'를 완성해 펴내기까지 여러 번 고치고 보충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고려 역사를 펴내면서 여러 차례 고쳐야 했을까요?

◇"'고려국사'는 사실과 다른 것이 많으니"

1392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세운 지 3개월 만인 10월 13일에 조준, 정도전, 정충, 윤소중에게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를 펴내라는 명(命)을 내렸어요. 그로부터 3년 뒤인 1395년 1월 25일 정도전과 정충이 고려사를 써서 태조에게 바쳤는데 이 책을 '고려국사'라고 불러요.

 /그림=김영석
/그림=김영석
그러나 1414년(태종 14)에 태종은 '고려국사'를 고쳐서 다시 편찬하게 했어요. '태조(이성계)에 대한 내용을 비롯해 공민왕 때 이후 일을 기록한 것이 사실과 다른 게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전해지진 않지만 '고려국사'는 태종과 맞섰던 정도전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책을 만든) 것으로 조선 초기 성리학을 따르는 사대부들의 사상과 재상 중심의 정치가 강조됐다고 해요. 왕권을 강화하려는 태종으로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거예요. 태종의 명을 받아 하륜을 중심으로 '고려국사'를 다시 고쳐 쓰는 작업을 시작했지만 하륜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태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세종 역시 다시 '고려국사'를 고쳐서 편찬하게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민왕 이하의 사적은 정도전이 들은 바로써 더 쓰고 깎고 하여, 사신(史臣)의 본 초고(草稿)와 같지 않은 곳이 매우 많으니, 어찌 뒷세상에 미쁘게(믿음성이 있게) 전할 수 있으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기록돼 있어요.

◇왕실 칭호와 용어가 문제

세종은 유관, 변계량에게 '고려사'를 다시 고쳐서 쓸 것을 명했고, 이들은 1421년(세종 3)에 잘못되거나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고친 '고려사'를 임금께 올렸어요. 그러나 세종은 이를 반포(널리 알리다)하지 않고 다시 고치게 했는데 고려 임금들이나 태후, 태자 등에 대한 호칭과 용어 문제 때문이었어요. '고려국사'를 비롯해 고쳐진 '고려사'에서도 호칭과 용어들을 제후국에 쓰는 용어로 낮춰서 썼거든요. 예를 들면 왕의 묘호(죽은 뒤 공덕을 기리는 이름)는 '○조'나 '○종' 대신에 '○○왕'으로, 태후나 태자는 대비나 세자로 말이에요.

1448년에 내용을 더 보완해 '고려사전문'이라는 이름으로 고려사 책이 편찬됐으나 쓴 사람이 공정했느냐 문제가 불거져 반포가 중지됐어요. 1449년에 세종은 김종서, 정인지 등에게 명령을 내려 다시 '고려사'를 펴내게 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451년에 드디어 '고려사'가 완성됐습니다.

◇기전체로 쓴 역사책 139권

세종은 '고려사' 편찬 방식에 대한 논의를 거쳐 편년체에서 기전체로 서술 방식을 바꿨습니다. 편년체는 날짜순으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는 역사 서술법입니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역사를 국왕 중심으로 쓰는 본기(本紀), 여러 인물의 전기인 열전(列傳)과 통치 제도, 문물, 경제, 자연현상 등을 항목별로 정리하는 방식이죠.

'고려사'는 세가(世家) 46권, 열전(列傳) 50권, 목록(目錄) 2권 등 총 139권으로 이뤄져 있어요. '고려국사'는 편년체로 쓰고 분량이 37권이었는데 '고려사'는 기전체에 139권으로 분량이 늘었고 60여 년 동안 복잡하고 힘들었던 과정을 거쳐 완성됐습니다.

'고려사'는 유교적인 명분에 따라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조선의 정치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동시에 고려 왕조의 역사와 전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애쓴 세종의 역사관과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라 여기며 당당하게 나라를 이끌었던 고려인의 진취적인 기상, 500년 고려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역사책입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