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법학에세이] 명백한 해악 없다면 '표현의 자유' 최대한 보장해야

입력 : 2021.01.06 03:30

솅크 재판

미국 헌법은 1787년 처음 만든 뒤 고칠 필요가 생기면 전체를 바꾸지 않고 일부만 고쳐서 덧붙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정 헌법'이라고 부릅니다.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종교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걸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민의 알 권리'가 여기에서 나왔죠. 하지만 1900년대 초에 이 원칙은 점차 약해지고 있었어요. 특히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면서 통과시킨 '간첩 방지법'은 정부를 비판하면 길게는 20년까지 감옥에 가둘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쟁 중이라 그런 법을 만들긴 했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왔죠.
찰스 솅크가 군 입대 거부를 권유한 인쇄물이에요. /위키피디아
찰스 솅크가 군 입대 거부를 권유한 인쇄물이에요. /위키피디아
미국이 1차 대전에 나가는 걸 반대하는 단체를 이끌던 찰스 솅크(Charles Schenck)는 군대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군대 가기를 거부할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군대 가기 거부를 권유하는 인쇄물 1만5000장을 편지로 보냈고, 결국 간첩 방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검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군인 모집을 방해한 건 아주 위험하고 반(反)국가적 행위이며 확실하게 현행법을 어긴 것이라 엄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솅크 편을 든 변호사는 자기 의견을 밝히는 건 수정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이 변호사는 개인 의견을 억누르는 건 오히려 국가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죠. 이 사건은 1919년 1월 우리 대법원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솅크에게 유죄를 내렸습니다. 판결문을 쓴 올리버 웬들 홈스 대법관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기준으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제시했어요.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회에 해가 되는 나쁜 일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명하게 예상할 수 있고, 얼마 안 가 그 해악이 진짜 일어난다면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홈스는 '극장의 화재'라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고 옳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극장 안에서 갑자기 일어나서 '불이야' 하고 거짓말을 해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혼란을 일으키는 거짓말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극장 안에서 진짜 불이 났는데 혼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이유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도 막겠다는 거냐는 반발도 나왔습니다.

사실 홈스가 말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란 건 알고 보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명백하고 현존하지 않는데 단지 해악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거죠. 물론 그 자유를 지나치게 함부로 누려서는 안 됩니다. 홈스는 "주먹을 휘두르는 건 맘대로 해도 되지만 반드시 상대방 코 앞에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곽한영·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