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오스트리아 왕실의 초호화 박물관…"역사에 남을 건물 만들라"

입력 : 2021.01.04 03:30

빈 미술사 박물관

600년 가까이 오스트리아를 장악하며 유럽을 호령했던 왕실 가문이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다른 유럽 왕실과 혼인을 통해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와도 연결돼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죠.

19세기 초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넘보자 합스부르크 왕가는 보물과 유물을 어떻게 잘 보관할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14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의 공작 루돌프 4세가 각종 진귀한 물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이래 축적해 온 왕가의 보물과 예술적인 유산은 실로 어마어마했어요. 왕가에서는 박물관을 설립할 생각이 절실했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지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1848년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선출되면서 비로소 박물관 설립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왕실 보물 보관하기 위해 건설

요제프 황제는 건축가 카를 하제나워와 고트프리트 젬퍼에게 비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길이길이 남을 웅장한 건물을 만들라고 당부했어요. 1871년부터 짓기 시작한 박물관은 온 정성을 다 쏟아부어 1880년에 완성됐습니다. 값비싼 대리석과 반짝이는 모자이크, 그리고 벽화로 호화롭게 장식하느라 시간을 더 들였고 1891년에야 공식 개관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빈 미술사 박물관이 탄생한 것이죠.빈 미술사 박물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과 함께 유럽 3대 박물관으로 꼽힙니다.
위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타나그라의 소녀와 아테나, 네크벳과 이시스가 있는 관, 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빈미술사박물관 실내입니다. /빈 미술사 박물관·위키피디아
위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타나그라의 소녀와 아테나, 네크벳과 이시스가 있는 관, 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빈미술사박물관 실내입니다. /빈 미술사 박물관·위키피디아
박물관 안에 들어서면 너무나 화려한 모습에 잠시 정신이 멍해질 정도입니다. 둥근 실내는 개별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12개의 아치형 입구들로 빙 둘러져 있어요. 대리석 바닥에서 높은 천장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빈틈 하나 없이 조각품과 금동 장식, 그리고 벽화로 꾸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원형의 공간을 미술품으로 장식하는 작업을 맡았던 여러 예술가 중에는 훗날 오스트리아를 대표할 만큼 유명해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도 끼어 있었어요.

◇미술사 안내하는 벽화

클림트의 벽화는 12m나 되는 높이에 그려져 있어요. 그냥 올려다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클림트의 열성 팬들은 이곳에 갈 때 망원경을 가지고 가기도 한대요. 2018년은 클림트가 사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는데요. 이를 기념해 박물관에서는 클림트의 그림 근처까지 올라가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 기간 중에 임시 구조물로 계단과 다리를 놓아주었답니다.

클림트의 벽화는 아치 위쪽 기둥과 기둥 사이마다 그려져 있어요. '타나그라의 소녀와 아테나'를 보면, 기둥을 끼고 왼쪽에는 고대 그리스의 여인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아테나 여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네크벳과 이시스가 있는 관'에서는 기둥 왼쪽에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앵크를 든 여인이 있고, 오른쪽에는 죽음의 여신 이시스의 이미지가 보입니다. 시대별로 고대 이집트의 미술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 그리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까지 모서리마다 그려두었어요. 전시실에서 펼쳐질 미술의 역사를 먼저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에게 도전한 바벨탑

이 박물관을 찾는 관람자가 꼭 보고 가는 대표 작품 중 하나는 1563년에 네덜란드의 화가 대(大) 브뤼헐(1525~1569)이 그린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은 브뤼헐이 야심차게 구상한 작품이에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건물뿐 아니라 멀리 보이는 마을의 모습에서부터 사람들의 옷차림과 동작에 이르기까지 세부 하나하나가 놀랍도록 정밀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인데, 특히 "도시와 탑을 건설해 그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라고 사람들이 말했다는 성경 구절에서 상상의 아이디어를 얻은 그림입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박물관을 개관한 지 불과 25년 만에 멸망하고 맙니다. 제국은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졌지만 빈미술사박물관은 여전히 과거의 영화를 기억한 채 관람자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