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빛·온도·습도 제어… 기존 농장보다 생산성 390배 높였죠

입력 : 2020.12.30 03:30

스마트 팜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코로나가 식량·농업 공급망을 파괴했다"면서 "더 많은 농산물을 실내 농장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건물 안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스마트 팜' 기술이 주목받게 된 거죠. 스마트 팜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산업인 농업에 최신 전자·통신 기술을 적용한 작물 재배 방식입니다. 응용 분야에 따라 스마트 농장, 스마트 온실, 스마트 축사, 스마트 양식장 등이 있습니다.

스마트 팜은 단순히 외부 날씨에 영향을 덜 받도록 실내 환경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IT를 농업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작물 품질도 높입니다. 작물이 자랄 때 단계별로 정밀하게 관리하고 예측할 수도 있죠. 또 농사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 등을 쌓아 나중에 활용할 수 있고, 인위적으로 더 좋은 재배 환경을 만들어 농산물 품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통신 기술이 잘 갖춰진다면 멀리 떨어져서도 농장을 관리할 수 있고, 자동화 기계가 있다면 농사일이 한결 더 편해집니다. 이런 과학 기술이 농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IT·과학 기술을 농업에

스마트 팜이 처음 시도된 건 온실이었습니다.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의 양 등 각종 관련 수치를 센서(sensor)로 관찰한 다음, 이 수치 자료를 통해 식물이 자라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듭니다. 창문을 열고 닫으면서 환기를 하고 햇빛을 쬐는 시간을 조절하며, 냉난방기 온도는 적당한 수준으로 맞춰줍니다. 식물에 뿌리는 물의 양도 적당하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가축을 기르는 축산업에도 스마트 팜과 비슷한 시스템이 적용됐습니다. 축사의 환경을 영상과 센서로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료나 물 등을 멀리서 제어해 공급하도록 하는 겁니다. 굳이 축사에 가지 않아도 영상을 통해 잘 자라고 있는지 볼 수 있고, 번식을 위한 조건이나 질병이 있는지 없는지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가축들은 보통 빽빽하게 모여있다 보니 전염병에 쉽게 감염되는데, 이런 스마트 팜은 가축 성장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6년 서울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 팜을 들여왔을 때 생산량은 27.9% 증가하고, 인건비와 병해충·질병은 각각 16%, 53.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죠.

처음에 스마트 팜은 온실이나 축사처럼 닫힌 실내 공간에서 이뤄졌지만, 이제는 야외에서도 가능합니다. 온실처럼 아주 정밀하게 통제할 순 없지만 온도, 습도와 기상 상황을 관찰해 원격으로 물을 공급하기도 하고, 병해충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스프링클러나 물 공급 모터 정도에만 의존했던 자동화 수준도 드론이 나타나면서 넓은 야외 농장까지 감당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직으로 농작물 재배

스마트 팜은 단지 농사에 필요한 각종 환경을 인간이 맘대로 통제한다는 것을 뛰어넘는 개념입니다. 전통적인 농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냥 농지에서 재배하는 게 아니라 농작물을 수직으로 쌓아 올립니다. 같은 땅 크기에서 수확량을 수백 배 늘릴 수 있습니다.

미국 스타트기업 에어로팜스는 분무형 재배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특수 제작한 천 위에 작물을 키우면서 천 아래로 뻗은 뿌리에 영양분이 섞인 물을 분무기로 뿌리는 방식입니다. 흙이 없어도 되니 일종의 수경(水耕) 재배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일반 농사보다는 물을 95% 적게 사용하고, 다른 수경 재배보다도 40% 적은 물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작물 뿌리를 땅속이 아니라 공기 중에 노출하기 때문에 충분한 산소 공급이 가능해 작물이 빨리 잘 자랍니다. 기존 농업 방식보다 생산성이 390배 높다네요. 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에어로팜스의 스마트 농장 안에는 높이 11m에 달하는 수직 농장에 작물들이 층층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에어로팜스는 또 햇빛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식물에 필요한 빛을 공급합니다.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 없는 노란색 빛은 없앨 수 있어 수확량이 더 늘어난다고 하네요. 수확물을 통해 모은 수백만 건 데이터로 작물 성장 과정을 분석하고,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이 곳곳에서 활동합니다.

◇산간 오지에 스마트 팜 구축

우리나라 농부들 평균 연령은 67세로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젊은 농부들은 찾아보기 어렵죠. 이 때문에 스마트 팜은 점점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나이 든 농부들이 농업용 드론, 자율주행 트랙터 같은 기계들을 활용하고, 트랙터에 센서를 심어서 토양과 기후 데이터를 수집한다면 아무래도 힘이 덜 들겠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 작물과 잡초를 구분해주는 잡초 제거 로봇까지 등장했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팜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했습니다. 온실 내부 기기를 제어하려면 인터넷이 필요한데, 인터넷 망이 없는 오지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스마트 팜을 구축합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포도농장 70곳이 이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배양액(식물을 기르는 데 필요한 성분이 든 액체) 성분과 농도를 조절해 질병 치료 등 특수 목적용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 팜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스마트 팜이 더 많이 퍼지면 시골 풍경도 바뀔 겁니다. 드론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로봇이 잡초를 뽑는 동안 집에서 음악을 즐기면서 모니터로 현장을 보는 '스마트 농부'들이 많아질 거예요.


주일우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