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가난해 피아노 없었지만 소리 상상하며 곡 썼어요

입력 : 2020.12.28 03:30

슈베르트

2020년 연말은 들뜨고 흥겹게 보내기보다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지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위대한 예술은 외롭고 고독한 상황에서 피어난다고들 하죠. 음악가 중에도 유독 외로운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고독하게 가꿔 나갔던 '겨울나그네'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늘 궁핍했던 작곡가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리히텐탈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첫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11세 때부터 13세까지 궁정 교회 합창단원으로도 활동한 슈베르트는 노래도 잘 불렀다고 해요. 1814년 아버지의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그해부터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하는데요. 가곡 '실을 잣는 그레첸' '마왕'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죠.

예술과 음악을 논했던 모임‘슈베르티아데’를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예술과 음악을 논했던 모임‘슈베르티아데’를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슈베르트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나 작품을 별로 알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출판된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고 수입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척 가난했어요. 그럼에도 작곡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죠. 600곡이 넘는 가곡과 미완성 작품을 포함해 13곡의 교향곡을 남겼습니다. 또 15곡의 현악 4중주를 포함한 실내악, 피아노곡, 오페라 등 다방면으로 작품 활동을 했죠.

◇끊임없이 악상 떠올린 천재

그는 가곡을 포함해 무려 1000곡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악상을 떠올릴 수 있는 천재였죠. 머릿속에 늘 멜로디들이 가득 차 있었던 그는 갑자기 악상이 떠오르면 충동적으로 작곡하곤 했대요. 식당에서 식사하다 생각난 멜로디를 냅킨에 메모해 완성한 가곡도 있어요. 또한 늘 궁핍했던 슈베르트는 자기 소유의 피아노도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야 마련할 수 있었어요. 21곡이 남아있는 피아노 소나타와 그 외의 작품들 대부분이 피아노 없이 소리를 상상하며 만든 곡이라는 사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습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차린 주변의 동료들이 '슈베르티아데'라는 모임을 만들어 예술과 음악을 논하며 어울렸죠. 이 모임에는 당시 유명한 성악가였던 요한 미하엘 포글, 법률가 요제프 폰 슈파운, 시인 요한 마이르호퍼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실연당한 청년의 노래

그의 작품들이 지닌 최대 매력은 인간적이고 풋풋한 느낌의 선율에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주옥같은 멜로디들을 다른 작품에 다시 사용해 또 다른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피아노 5중주 '송어',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 피아노 독주곡인 '방랑자' 환상곡 등에 붙어 있는 부제는 그가 먼저 만든 가곡의 이름이기도 하죠. 슈베르트는 성악곡인 이 작품들의 선율을 기악곡 속 변주곡의 주제로 사용해 더 큰 규모의 걸작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겨울나그네'입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와 함께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해인 1827년 10월 만들어졌습니다. 독일어 제목을 직역하면 '겨울 여행'인 이 가곡집은 모두 24곡인데,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에 곡을 붙였죠. 뮐러의 작품 속 화자는 여인에게 실연당한 후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며 겨울 풍경처럼 스산하고 황량한 자신의 심경을 노래합니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괴로움이 진하게 고여 있는 노래입니다.

1828년 11월 19일 슈베르트는 앓고 있던 여러 가지 병으로 31세라는 안타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슈베르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베토벤이었는데,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슈베르트의 유해를 베토벤 옆에 묻어주었습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는 1888년 빈 중앙 묘지로 옮겨 와 지금도 그곳에서 함께 쉬고 있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