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법학에세이] "성탄절엔 총성 들리지 않게 하자"… 1차 대전 영국군·독일군이 캐럴 부르며 휴식

입력 : 2020.12.23 03:30

크리스마스 휴전

이제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없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예년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도 어렵지만 최악 크리스마스는 아마 전쟁을 치르는 중에 참호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 /위키피디아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 /위키피디아
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4년 유럽 서부 전선 병사들이 바로 그랬어요. 독일군과 이에 맞선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서로 깊은 참호를 파고 유럽 서부 지역 여기저기에서 대치하고 있었는데 어느 쪽도 전진하지 못하고 시간을 끄는 사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어요.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최소한 천사들이 노래하는 동안만이라도 총성이 들리지 않도록 하자"며 크리스마스 휴전을 전쟁 당사국들에 요청했어요. 이 제안은 공식적으로는 거부당했지만, 전쟁에 질려 있던 병사들끼리는 비공식으로 일시적 정전을 약속하고 서로 참호에서 나와 음식을 나눠 먹으며 대화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독일군과 영국군이 번갈아가며 캐럴을 부르기도 하고 영국에서 편지를 받아다가 독일군에게 전달해주는 일도 있었어요.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두 진영 중간 지대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이 축구 경기를 했대요.

문제는 이런 크리스마스 휴전은 상부의 전투 명령을 어기는 '명령 불복종' 행위였다는 겁니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이듬해인 1915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작년 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여러 차례 내려보냈습니다. 그래서 1915년 크리스마스에 독일군 장교가 또 휴전을 제안하자 영국군 장교 이언 콜쿼혼은 휴전은 금지돼 있다며 거절해요.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병사들의 시체를 묻을 45분 동안만 휴전하자는 제안을 다시 했고 콜쿼혼은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참호에서 나와 동료들의 시체를 묻으며 서로 잠시 대화한 뒤 다시 참호로 돌아가 호각 소리와 함께 전투를 재개했어요.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군 사령부는 이런 느슨한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10일 후 콜쿼혼은 '명령 불복종' 혐의로 체포됐고 1916년 1월 17일 군법회의에 넘겨졌습니다.

전쟁 중 '명령 불복종'은 사형당할 수도 있는 중범죄입니다. 이미 사령부에서 여러 차례 명백한 금지 명령을 내려보냈기 때문에 유죄판결이 나올 것이 뻔한 상황이었죠. 5시간 동안 이어진 심리 끝에 이 재판을 맡은 판사들은 콜쿼혼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처벌로 가장 가벼운 '견책'을 선고했고 영국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헤이그 장군은 '그동안의 공로를 감안해야 한다'며 이 처벌마저도 사면 결정을 내립니다.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난 거죠. 콜쿼혼은 "군인들도 크리스마스 정신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적'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답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