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화폐로 세상 읽기] 영국 기사 작위 받은 소프라노… 오페라 중심지 '코벤트 가든'의 여왕으로 불렸죠

입력 : 2020.12.14 03:30

100호주달러와 넬리 멜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100달러(약 8만1200원) 지폐<사진>에는 소프라노 가수 넬리 멜바(1861~1931)가 실려 있습니다. 넬리 멜바의 본명은 헬렌 포터 미첼입니다. 멜바라는 이름은 호주의 항구도시 멜버른에서 따온 예명입니다.
/세계화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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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바는 1861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인근의 리치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멜바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가수였고 어머니는 음악 교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죠. 그녀는 꼬마 천재 음악가로 명성을 떨쳤는데, 6세에 리치먼드 국립극장에서 성악 독창회를 열 정도였습니다. 안정된 맑은 음색의 미성과 폭넓은 음역, 정확한 가창력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죠.

멜바는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1886년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유명한 가수였던 독일의 성악가 마틸데 마르케시의 문하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했어요. 그녀는 스승 마르케시의 추천으로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유서 깊은 라 모네(La Monnais) 왕립극장에서 공연하게 됩니다. 당시 몸이 안 좋았던 주연 가수의 긴급 대역이었죠. 멜바는 이 첫 무대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명성을 얻은 멜바는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오페라 극장이 모여 있는 '코벤트 가든'에서 1888년부터 1914년까지 해마다 공연했어요. 그래서 멜바를 '코벤트 가든의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성악가의 꿈을 갖고 호주를 떠난 지 16년 만인 1902년, 멜바는 고국으로 돌아와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등 호주 주요 도시를 돌면서 귀국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1911년 멜바는 오페라단을 조직했어요. 이 오페라단은 상설 단체는 아니고 일시적인 순회 공연을 위해 조직됐는데, 이 오페라단의 공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훗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설립에 밑거름이 됐다고 해요.

멜바는 1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합군을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해 콘서트 투어 공연을 했습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영국 국왕 조지 5세는 멜바에게 '데임' 작위를 수여했어요. '데임'은 남성 기사 작위인 '경'에 해당하는 여성 작위입니다. 영국 사회가 그녀에 대해 영국 귀족에 버금가는 존경과 권위를 인정한 거죠. 빅토리아 여왕도 멜바를 초대해 버킹엄 궁전에서 연주회를 열었고, 1927년에는 영국 왕실에서 대영제국 십자훈장을 받았습니다.

멜바의 인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20세기 초 프랑스 최고 요리사였던 에스코피에는 멜바가 런던에 머물고 있을 때 멜바를 위한 디저트를 선보였어요. 얼음으로 백조를 조각하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과 복숭아를 얹고 솜사탕으로 덮었죠. 이 디저트에는 '피치 멜바'라는 이름이 붙었죠. 그녀가 즐겨 먹던 얇은 식빵은 지금도 '멜바 토스트'라고 부릅니다.

멜바는 1926년 65세의 나이로 코벤트 가든에서 은퇴 공연을 열었습니다. 영국 국왕 조지 5세와 왕실 가족이 참석했죠. 은퇴 후 멜바는 멜버른 음악원의 초대 원장으로 후진 양성에 전념하다 1931년 2월 23일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어요. 조문객 20여 만명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