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구두쇠 억만장자의 '수집의 기쁨'… 박물관에 7600억원 남겼죠

입력 : 2020.12.14 03:30

게티 박물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는 고흐의 '아이리스', 폼페이 벽화, 기원전 5세기 아프로디테상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미국의 석유 재벌 진 폴 게티(1892~1976)의 개인 소장품과 기금을 바탕으로 만든 게티박물관입니다.

게티박물관은 LA 인근 브렌트우드에 있는 게티센터와 LA 말리부에 있는 게티 빌라의 미술관을 통칭해요. 1997년에 완공된 게티센터는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14년에 걸쳐 건설했어요. 박물관과 학술 연구원, 유물 보존원, 그리고 문화 재단까지 갖추고 있답니다.

◇구두쇠 재벌의 예술품 수집

게티는 1966년 기네스북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민간인'에 올랐습니다. 재산이 60억달러로 알려졌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약 258억달러, 우리 돈으로 29조원에 달했어요. 게티는 돈을 쓰지 않는 '구두쇠 재벌'로 유명했습니다. 셔츠가 해지면 소매만 바꿔 달아 입었고, 받은 편지지의 여백에 답장을 적어 보냈다고 해요. 1973년 납치된 손자의 몸값을 1700만달러에서 300만달러로 깎은 일화도 유명하죠.

게티가 유일하게 돈을 아끼지 않은 분야가 있었습니다. 예술품 수집이었죠. 게티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과 17~18세기 프랑스 장인들이 만든 장식 미술품을 수집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물건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순수하지. 변하지도 않고 실망시키지도 않는다"고 말했대요.

1930년대 초부터 하나둘 모은 수집품이 20년이 지나 방대해지자 1954년에 게티는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 있는 자기 빌라를 미술관으로 개조해 일반에게 공개하기 시작했어요. 게티가 쓴 책 '수집의 기쁨'에는 "수집가는 원한다면 과거로 시간대를 옮겨 가서 거닐 수 있다. 걷다 보면 옛 그리스 철학자나 로마 황제도 만날 수 있고, 오래전 위인이나 이름 모를 시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모든 것이 수집한 물건들을 통해 되살아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집품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베르사유궁 가구 제작한 샤를 불

수많은 소장품 중에 오늘은 프랑스 최고 가구 장인이라는 칭송을 듣는 앙드레 샤를 불(1642~1732)이 만든 가구를 소개할게요. 미술사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지 않고 게티가 젊은 시절 직접 수집한 작품입니다.
①앙드레 샤를 불의 서랍장. ②앙드레 샤를 불의 벽시계. ③로버트 어윈의 철쭉 연못. /게티 박물관·위키피디아
①앙드레 샤를 불의 서랍장. ②앙드레 샤를 불의 벽시계. ③로버트 어윈의 철쭉 연못. /게티 박물관·위키피디아
사진1은 서랍장이에요. 불은 루이 14세 시절 궁정 장인으로 발탁돼 화려한 베르사유궁에 어울리는 가구와 장식품을 여럿 제작했습니다. 이 서랍장도 루이 14세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불 상감'이라고 하는 기법이 유명한데, 나무 표면을 판 홈 부분에 다른 색 재료를 새겨 넣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이에요.

사진2는 벽시계인데, 불이 받침대를 만들었습니다. 17~18세기에 시계는 아무나 집에 둘 수 없을 만큼 비싼 고급 기계였습니다. 불은 금칠한 동으로 시계 주변을 장식했는데, 아래쪽에는 노인이 앉아 있고, 꼭대기에는 어린아이 형상이 붙어 있습니다. 날개 달린 노인은 시간의 신입니다. 죽음의 개념을 의인화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작고 귀여운 날개를 갖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생명을 의인화한 것이에요.

◇정원의 형태로 된 조각

사진3은 미국의 설치 미술가 로버트 어윈(1928년생)이 만든 '철쭉 연못'입니다. 1992년에 게티센터의 정원 디자인을 맡은 어윈은 처음부터 '정원 형태로 된 조각'을 구상했어요. 살아있는 철쭉나무를 미로 형태로 제시한 어윈의 정원 조각품은 1997년에 센터 개관에 맞추어 완성됐습니다. 전체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핵심 장소가 바로 이 철쭉 연못이랍니다.

게티는 1976년에 사망하면서 석유 기업 주식 400만주를 게티 박물관에 남겼습니다. 당시 돈으로 약 7억달러(약 7600억원)라고 합니다. 게티 박물관은 연간 200만여 명이 방문하는 미국의 인기 박물관입니다. 게티의 유언에 따라 관람료는 무료랍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