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어리석은 신 '모리아'… 더 어리석은 귀족과 성직자 통렬하게 풍자하죠

입력 : 2020.12.08 03:30

우신예찬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1511년 출간한 '우신예찬'은 15세기 말~16세기 초 중세 교회의 부패와 어리석은 세상을 질타한 작품입니다. 풍자문학을 대표하죠. 에라스뮈스는 이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기 최고 수준 인문학자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효시가 되는 '95조의 반박문'을 쓰도록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우신예찬 초판에 있는 모리아 그림입니다. /위키피디아
우신예찬 초판에 있는 모리아 그림입니다. /위키피디아
책 제목에 있는 '우신'은 말 그대로 어리석은 신입니다. 이름은 모리아(Moria)예요. 그는 자신이 "신들과 인간들을 즐겁게 하는 재주를 가진 유일한 존재"라며 자화자찬으로 연설을 시작해요. 우신의 말에 따르면 현자(賢者), 즉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재미와 즐거움이 없으면 사람들은 마음에 더 깊은 고통을 받는데 지혜로운 자들이 그 주범이라는 거죠. 결국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게 우신의 주장이에요. 우신은 그들이 '흰 것을 검다 하고, 찬 것을 뜨겁다 하는' 거짓말쟁이라고 욕해요.

우신은 진정한 믿음이나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자신들이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어리석음과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당시 이런 사람이 많았는데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각한 비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교황이나 군주에 대한 아주 사소한 농담에는 발끈했어요. 그것이 자기 이익과 연관된 일이면 더욱더 그랬습니다. 우신은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성직자까지 세속적 욕심에 찌들었다며 세상을 조롱해요.

태어나면서부터 울지 않고 해맑게 웃었다는 우신이 당당하게 세상을 조롱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신을 돕는 하인들 이름이 자아도취, 아부, 태만, 환락, 경솔, 음란, 호색입니다. 머슴 이름은 광란 축제, 인사불성이고요. 우신은 이들을 통해 군주와 성직자는 물론 세상만사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요. 스스로를 어리석은 신이라고 내세우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 세계를 웃음으로 조롱한 거죠.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에서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 학문이 서로 자기만 잘났다고 주장하는 당시 세태를 우신의 입을 통해 풍자해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교파와 전통만을 고집하는 교회와 성직자도 모진 풍자를 피할 수 없었죠. 그래서 우신예찬은 출간되자마자 학자와 성직자들의 분노를 샀고,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풍자와 해학으로 당대 현실을 빠짐없이 고발한 우신예찬을 50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어요.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도 우신이 비판한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