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신라·고려의 국가 행사… 왕건은 "연등회 이어가라" 유훈 남겼죠

입력 : 2020.11.26 05:00

연등회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한국의 불교 행사인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등에 이어 한국에서 등록하는 21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는 것이죠. 연등회는 언제 시작한 어떤 행사일까요?

◇신라 때 시작한 국가 축제

등불을 켜고 행진하며 가족, 이웃과 나라가 평안하기를 비는 연등회는 그 기록이 서기 6세기 신라 때부터 나옵니다. 진흥왕 12년인 서기 551년 봄에 신라에서 가장 큰 절 황룡사에서 열렸고, 겨울에 열리는 팔관회와 쌍벽을 이루는 국가적 행사였다고 해요. 팔관회 역시 불교 행사였지만, 훗날 고려 때로 가면 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무속적 성격이 더해집니다.

그림=김영석
그림=김영석
봄밤에 여러 사람이 환한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연등회는 자연스럽게 청춘 남녀가 만나는 축제이기도 했답니다. 여기서 눈이 맞은 남녀의 스토리 중 하나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현과 호랑이' 이야기예요. 신라 원성왕 때 김현이란 화랑이 흥륜사에서 탑을 빙빙 도는 '탑돌이'를 했는데, 문득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같이 탑을 돌았고 김현과 연인 관계가 됐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였는데,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김현이 "호랑이를 잡아 백성을 살렸다"는 상을 받도록 해서 출셋길을 열어줬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그 여인이 정말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처럼 무서운 도적이나 귀족 세력의 일원'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어요.

◇쌀 달라 조르는 '한국판 핼러윈'

통일신라에 이어 고려에서도 연등회를 중요한 국가 행사로 삼았어요. 태조 왕건의 유훈인 '훈요십조'에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계속 이어가라'는 당부가 들어있죠. 그런데 6대 임금인 성종 때 유학자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리면서 연등회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연등과 팔관으로 백성을 많이 동원하고 노역이 심하니 이를 줄여 백성이 힘을 펴게 하라'고 주장하죠. 하도 큰 행사라서 예산과 인력 동원이 상당했던 모양이에요. 이 때문에 잠시 폐지되기도 했는데, 8대 왕인 현종 때 부활했다고 합니다. 현종 이후 '고려사'에 나타난 연등 행사 기록은 모두 104번이나 돼요.

궁중에서도 연등회가 열렸습니다. 고려 말 공민왕 때는 도성의 어린이들이 연등을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 대나무에 깃발을 만들어 달고 도성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쌀을 구했다고 해요. 공민왕도 두 번이나 어린이들에게 쌀을 하사했답니다. 이런 일을 '호기풍속'이라고 하는데, 서양에서 핼러윈(Halloween·10월 31일) 때 아이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이나 과자를 달라는 풍속과 비슷해요.

◇조선에서 현대로 이어진 전통

고려가 무너지고 유교 국가인 조선이 들어서면서 팔관회는 폐지됐고, 연등회 역시 규모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죠. 15세기 문신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 "예전에 번성하던 것과 같지는 않다"는 구절이 나와요. 열리기는 열렸다는 것이죠. 물과 육지에 사는 수많은 영(靈)을 공양하는 의식인 '수륙재'가 연등회를 계승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19세기 말의 '임하필기'에는 연등회 때 호기풍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쌀을 달라고 했던 풍속이 몇 백 년이 지났어도 없어지지 않았던 거죠.

연등회의 전통은 1955년 서울 조계사 주변에서 제등 행렬을 하면서 다시 이어졌어요. 1996년부터는 연등 행렬 규모가 커졌고, 여러 행사가 더해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봄철 축제로 거듭났죠.

2012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돼 전통성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인도·스리랑카·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국적·인종·종교의 장애를 뛰어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요즘엔 만화 캐릭터로 만든 연등도 볼 수 있어요.


유석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