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170년 먼지 쌓였던 악보의 재발견… 첼로를 빛나게 만들었죠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잊혔던 악보 뭉치의 부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정확한 창작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흐가 독일 쾨텐에서 활동하던 1720년쯤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발표된 이후 170년 이상 세상에서 잊혔죠. 이 모음곡들의 진가를 다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였어요.
카살스는 13세였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악기 가게에서 아주 오래된 악보 뭉치를 발견합니다. 그가 찾아낸 바로 그 악보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어요.
바흐의 아내였던 안나 막달레나가 만든 필사본을 누군가가 다시 옮겨 쓴 것이었죠. 카살스는 당시 소수의 음악학자나 첼리스트들에게만 알려졌었던 이 곡을 깊이 연구해보겠다고 마음먹어요. 그는 오랜 준비 후 25세 때 최초로 모음곡의 공개 연주회를 갖습니다. 이후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녹음해 발표한 음반이 크게 화제를 모았어요. 카살스는 바흐의 위대한 작품을 부활시킨 선구자가 되었죠.
◇첼로의 넓은 음역과 표현력 살려
바흐의 이 모음곡이 최고의 걸작이라 칭송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흐의 시대보다 훨씬 오래전에 유행하던 춤곡들을 이용해 첼로 독주를 위한 모음곡을 만들었다는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죠. 첼로 혼자 연주하는 이 곡들에 맞춰 춤을 추는 귀족은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춤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상'을 위한 춤곡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바흐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기발한 착상이었던 거죠.
-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서양 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대요. /게티이미지코리아
모음곡은 한 곡이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중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라는 이름의 춤곡은 여섯 개의 모음곡 모두에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각각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을 대표하는 이 춤곡들이 유행했던 시기는 16세기에서 17세기였는데 바흐는 이렇게 오래된 춤곡의 리듬을 첼로 작품에 적용시킨 것이죠.
이 작품이 위대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당시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첼로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제시한 작품이었다는 점입니다. 바흐가 활동하던 때 첼로의 역할은 독주보다는 고음 악기를 보조하거나 오케스트라에서 저음과 화성을 담당하는 데 그쳤죠. 하지만 바흐는 이 악기의 넓은 음역과 풍부한 표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분위기와 색채가 들어간 거대한 모음곡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바흐가 첼리스트들의 기교와 음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든 연습곡의 성격도 갖고 있어요. 첼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교재이자 콩쿠르, 시험 등에서 반드시 연주해야 하는 필수 작품이기도 합니다.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는 인기 작품
아름다운 선율과 독백하듯 연주하는 첼로의 음색이 인상적인 이 모음곡은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는 명곡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름난 첼리스트라면 대부분 이 곡을 녹음해 음반을 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미국 국적의 중국계 첼리스트인 요요마는 이 모음곡에 큰 애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해요.
이 곡은 연주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어떤 사람은 풍성하고 여유 있는 느낌으로 노래하듯 연주하는가 하면, 춤곡의 느낌을 살려서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주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