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돌연변이 잦아 백신 없어… 무증상 많아 조기 발견 어렵대요

입력 : 2020.11.05 03:30

C형 간염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어요.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실체를 규명한 하비 올터 미국 국립보건원 박사, 영국 출신 마이클 호턴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 찰스 라이스 미국 록펠러대 교수 등 미국과 영국 의학자 3명이 공동 수상했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매년 4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C형 간염을 퇴치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밝혔어요. 그렇다면 C형 간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이 80%

간은 무게가 1.2~1.5kg으로 심장(약 300g)보다 서너 배나 무거운,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입니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화학 공장'이라 불러요. 우리가 섭취한 모든 영양분을 온몸으로 보내고, 몸에 해로운 물질은 해독하지요. 이렇게 간이 하는 일이 500가지가 넘는다고 해요.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간은 신경세포가 없기 때문에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간에 문제가 생겨도 자각 증상이 없어 발견하기 쉽지 않고, 이상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심각한 상태가 된 이후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침묵의 장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요.

간에 생기는 대표적 질환은 간염입니다. 간암이나 간경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간염은 간세포가 파괴돼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을 말해요. 바이러스에 따른 간염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알코올성은 20% 정도라고 해요.

◇발견 순서 따라 이름 붙이는 간염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A·B·C ·D·E·G형 6가지가 알려져 있지만 보통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건 A, B, C형이에요. 간염 뒤에 붙은 'A·B·C' 등은 바이러스가 발견된 순서에 따라 알파벳을 붙인 것입니다. D·E·G형 간염은 아프리카·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에서 종종 발생하는 등 상대적으로 감염 사례가 드물다고 해요.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장티푸스나 콜레라처럼 환자의 배설물로 오염된 음식이나 식수, 오염된 물에서 잡은 어패류 등을 먹고 감염돼요. 황달, 근육통,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나는데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양을 충분히 보충하고 쉬면 자연히 낫기도 해요. 회복한 뒤에는 평생 면역력을 지녀 다시 감염되지 않는다고 해요. 아직 특별한 치료제가 없지만 다행히 백신이 있답니다.

B형 간염은 바이러스를 포함한 피 같은 체액을 통해 옮아요. 오염된 혈액을 수혈했거나 주사, 문신 시술 등으로 감염될 수 있어요. 오랜 기간에 걸쳐 만성화하고,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를 거쳐 간암으로 악화하기도 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합니다. 1965년 미국 의학자 바루크 블럼버그가 이 바이러스를 발견했지요. 이 공로로 블럼버그 박사는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고 항바이러스제를 이용한 치료도 효과적이죠.

우리나라에선 B형 간염이 간염 환자의 대다수인 86%를 차지하고, C형 간염이 12%, A형 간염은 2% 정도예요.

◇C형은 변이 잦고 백신 없어

C형 간염은 코로나 바이러스나 독감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가 잦은 RNA형 바이러스예요. RNA는 구조가 안정적인 DNA와 달리 불안정해 변형이 쉽게 일어납니다. B형 간염처럼 환자의 혈액 등으로 감염되는 질병이지요. 역시 수혈과 주사기를 통한 감염이 주요 원인입니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도 한 의원에서 C형 간염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났는데요. 1회용 주사기를 여러 환자에게 돌려 쓰는 바람에 이런 일이 터진 것으로 알려졌어요.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정체는 1975년 하비 올터가 수혈을 통해 전염되는 특이한 바이러스 질환을 보고하면서 처음 드러났어요. A형이나 B형과 다른 간염 바이러스 사례를 발견하고 이 증상이 다른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거예요. 이후 1989년 마이클 호턴이 C형 간염 바이러스 존재를 처음으로 규명했고, 2005년 찰스 라이스가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내부 단백질 구조를 처음 밝혀냈죠.

C형 간염에 걸리면 만성 간염으로 발전할 위험이 70~80%,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30~40%로 높아요. 게다가 C형 간염은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잦아 아직 백신이 없습니다. 다만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 덕분에 빠르게 C형 간염을 극복하는 치료제들이 나오고 있답니다. 현재 C형 간염은 조기에 치료제를 사용해서 바이러스를 박멸하면 간경화나 간암 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요. 12주 정도 치료제를 복용하면 90% 이상 완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대부분 증상이 없어 혈액 검사를 받기 전까지 감염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거예요. 그래서 의학자들은 완치에 가까운 치료를 할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해요.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C형 간염 퇴치를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