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로마 제국이 세운 '모든 신을 위한 신전'… 돔은 우주, 원형 구멍은 태양 상징해요

입력 : 2020.10.21 03:30

판테온

이탈리아 로마에는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남아 있지만 유독 건축가와 예술가가 찬탄을 내뱉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판테온(Pantheon)입니다. '모든 신을 위한'이란 뜻의 그리스어 '판테이온'에서 유래한 이 건축물은 다신교 국가였던 고대 로마 제국의 관용 정신을 보여준답니다. 당시 피정복지 신까지 모시는 '만신전(萬神殿)'으로 세워졌기 때문이지요.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위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던 아그리파가 세웠어요. 약 100년 후인 기원후 8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118~125년에 걸쳐 재건했습니다.
뼈대 없이 오직 콘크리트로만 구현한 판테온 돔. /픽사베이
뼈대 없이 오직 콘크리트로만 구현한 판테온 돔. /픽사베이

판테온은 직사각형의 고전적 현관과 원형 건물이 합쳐진 구조로, 현관 정면에는 12.5m 높이 기둥 8개가 세워져 있어요. 원형 본당에 들어서면 창문과 기둥이 전혀 없는 반구 형태의 거대한 돔이 나타나지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건물 높이와 돔 지름이 43.3m로 같답니다. 돔은 정확히 건물 내부 높이의 절반 지점(21.65m)에서 시작되지요.

판테온 돔은 고대 로마 시대 최첨단 공학 지식의 산물입니다. 내부에 어떤 뼈대도 넣지 않고 오직 로만 콘크리트로 구현했거든요. 돔의 무게만도 4335톤에 달하는데 돔 하부를 감당하는 벽의 두께가 6.4m에서 시작해 맨 꼭대기로 가면 1.2m까지 얇아집니다. 대신 돔 안쪽에 오목하게 판 수많은 정사각형 홈이 무거운 돔의 힘을 분산하는 역할을 맡죠.

당시 천장 꼭대기를 8.3m 직경의 원형 구멍인 오쿨루스로 마무리한 것도 굉장히 도전적인 시도였어요. 반구의 돔은 우주, 오쿨루스는 태양을 상징하는데요. 태양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쿨루스를 통과해 돔 내부를 고요하게 밝히는 모습이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게다가 실내에서 불을 피우면 공기가 상승하면서 오쿨루스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가벼운 빗방울이 내부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해요. 빗줄기가 강할 때는 내부로 떨어져 바닥 배수구로 빠지게 설계했죠.

이런 놀라운 건축물이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던 건 609년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가톨릭 성당으로 용도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1400년 넘게 성당으로 쓰이며 파괴의 수난에서 비켜 설 수 있었어요.

중세 초기 판테온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거대함 때문에 한때 '악마의 집'이라 부르기도 했는데요. 르네상스 이후 고대 로마 문명을 상징하는 전설적 건축물로 탈바꿈했답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아 커다란 돔을 벽돌로 구축해 피렌체의 명물인 '두오모 성당'을 설계했고,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천사의 건물'이라 극찬했어요. 전면 삼각형 지붕에서 후면 원형 돔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파리의 팡테옹(국립묘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롤스로이스의 차 전면부 그릴도 판테온 현관 기둥을 반복적으로 나열한 것이랍니다.

판테온에는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가 묻혀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현대 건축가에게 영감을 준 이 고대 건축물은 지금도 독보적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종현·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