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화폐로 세상 읽기] 경제 파탄나자 '사상 최고 액면가' 지폐 발행… 미국돈 0.003달러에 불과했대요

입력 : 2020.10.06 03:30

짐바브웨 100조달러

아프리카 짐바브웨에는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액면가가 큰 화폐가 있었습니다. 2009년 발행된 지폐인데 숫자 0이 무려 14개가 붙어있어요. 바로 '100조(兆·trillion)짐바브웨달러<사진>'입니다.
/세계화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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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00조달러를 약자나 문자로 쓰지 않고 '0'을 14개나 사용했는데요. 이는 짐바브웨에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인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 짐바브웨 국민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1980년 독립된 후에야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 되었죠. 그러나 빈부 격차 때문에 여전히 의무교육의 혜택을 못 받는 인구가 많다고 해요.

짐바브웨가 100조달러를 발행한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극단적인 물가 급등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08년 8월 짐바브웨 정부는 화폐 개혁을 통해 1, 5, 10, 20, 100, 500, 1000달러 등 화폐 7종을 발행했어요. 하지만 경제 불안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그해 12월 100억달러 지폐, 2009년 1월 100조달러 지폐를 발행했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09년까지 1년간 짐바브웨의 물가 상승률이 897해(垓·경(京)의 1만배)%까지 치솟았다고 해요. 얼마나 인플레가 심했던지 당시 100억달러로 고작 달걀 3개만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짐바브웨 정부가 0을 12개나 한꺼번에 없애는 화폐 개혁을 단행하면서 지금은 100조달러 지폐를 볼 수 없어요.

짐바브웨는 왜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졌을까요? 1990년대 선진국의 원조 중단과 외화 부족으로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돈을 마구 찍어냈기 때문이에요. 이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면서 화폐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생겨났어요. 여기에 37년간 독재자로 군림한 무가베 대통령의 실정과 부정부패 등으로 경제정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죠.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2009년 국민들의 예금을 미국 달러화로 바꿔준 적도 있는데, 당시 3경5000조짐바브웨달러가 미국 돈 1달러에 해당했으니 100조짐바브웨달러는 미국 돈 약 0.003달러에 불과했어요.

100조달러 화폐 앞면에는 짐바브웨의 독특한 자연 유산인 3층 흔들바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바위는 오랜 기간 화강암이 비바람에 풍화되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요. 언뜻 조금만 밀어도 굴러떨어질 것 같지만 앞뒤로 흔들리기만 할 뿐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원준·세계화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