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물건] 1931년 헝가리 출신 유대인 형제가 발명… 신문기자 형과 화학자 동생의 합작품이었어요

입력 : 2020.10.06 03:30

볼펜

볼펜을 많이 쓰는 직업인들은 잉크 소모량이 많아서 책상 한편에 볼펜 심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갈아끼우곤 해요. 이처럼 심만 갈아끼우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글을 쓸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인 볼펜은 언제 어떻게 발명되었을까요?

볼펜 발명 이전에 고대·중세 유럽에서 주로 쓰던 필기도구는 깃펜이었습니다. 거위나 꿩 등 깃대 속이 텅 비어 있는 새의 깃털을 이용해 펜으로 사용했던 것이죠. 하지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금속으로 된 펜촉을 이용해 잉크를 찍어 쓰는 딥펜이나 펜대에 잉크를 채워서 쓰는 만년필이 대량 양산됐어요.
1945년 라슬로 비로 형제가 발명한 볼펜 광고예요. /위키피디아
1945년 라슬로 비로 형제가 발명한 볼펜 광고예요. /위키피디아
만년필은 편리했지만 나무나 가죽 등 표면이 거친 재질에는 잘 써지지 않고 종이가 자주 찢기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던 영국의 가죽 가공업자 존 라우드는 1888년 강철로 만든 구슬을 강철 소켓으로 감싸는 방식의 새로운 펜을 개발했습니다. 볼펜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는 이 펜의 개발로 인해 거친 표면 위에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글씨를 쓸 때 잉크가 새는 현상도 있었고 다소 사용감이 거친 면이 있어 상용화되지 못했어요.

이후 편리한 볼펜 개발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펜의 개발은 의외로 어려웠어요. 볼이 너무 뻑뻑하면 글이 잘 써지지 않았고, 볼이 너무 느슨하면 잉크가 새는 문제가 발생했죠. 또 잉크 역시 너무 묽거나 걸쭉하면 잉크가 새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유대계 헝가리인인 라슬로 비로, 죄르지 비로 형제였답니다. 신문기자이면서 발명가였던 형 라슬로는 잉크가 안에서 굳지 않으면서도 볼에 적당히 묻어 나오는 '볼 베어링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화학자인 동생 죄르지는 너무 쉽게 새지도 않고 너무 뻑뻑해서 막히지도 않는 적당한 점성을 지니는 잉크를 개발했죠.

두 형제는 이렇게 개발한 볼펜을 1931년 박람회에 출품했고, 이어 1938년 영국에 특허를 출원하였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반유대주의가 전 유럽으로 확산되자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지요. 이후 1943년 아르헨티나에 새로운 볼펜 특허를 출원하였어요. 형제가 발명한 볼펜을 바탕으로 1950년 영국의 플래티그넘사에서 흔히 '똑딱이'라고 불리는 클릭형 볼펜을 개발했습니다. 이 볼펜은 뚜껑을 닫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지요.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부터 볼펜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어요. 1963년 광신화학에서 검은색과 흰색으로 디자인된 '모나미 153' 볼펜을 출시했죠. 이 볼펜은 단순한 사용감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요. 어찌나 모나미 볼펜이 잘 팔렸는지 광신화학은 1974년 회사 이름마저 모나미로 바꾸었어요. 지난 40년 동안 30억 자루가 넘는 볼펜이 팔렸답니다.

중국에선 2017년에야 볼펜 심 개발에 성공했어요. 한 해 400억개의 볼펜을 만들면서도 핵심 기술인 스테인리스강 볼펜 심을 만들지 못하고 수입했기 때문인데요. 리커창 총리가 볼펜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느냐며 질책하자 집요한 노력 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김현철·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