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법학 에세이] 2대 애덤스 대통령의 판사 임명 효력 다퉈… 1803년 사상 첫 위헌법률심판

입력 : 2020.09.23 10:16

미국 '마버리 사건'

미국 여성 운동과 진보 세력의 큰 버팀목이었고,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미 연방대법원은 9명의 판사에게 종신 임기를 보장하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대단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요.

연방대법원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행정부가 내린 명령이나 의회에서 만든 법률을 헌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이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사법심사(judicial review)'에 있답니다. 이 권한은 1803년 '마버리 사건'에서 시작됐어요.
미 연방대법원 건물 벽에는 “법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은 사법부의 권한이자 의무”라고 판결한 마셜 대법원장의 판결문이 쓰여 있어요. /위키피디아
미 연방대법원 건물 벽에는 “법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은 사법부의 권한이자 의무”라고 판결한 마셜 대법원장의 판결문이 쓰여 있어요. /위키피디아
마버리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대통령은 2대 존 애덤스였어요. 그가 재선에 실패하자 1801년 평생 라이벌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이 제3대 대통령이 됐죠. 그러자 애덤스는 임기를 이틀 남겨두고 판사들을 수십 명이나 기습 임명해 버렸답니다. 자신이 임명한 판사들을 통해 제퍼슨을 임기 내내 괴롭게 하려 한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한 나머지 몇몇 사람에게는 임명장이 채 전달되지 못한 상태에서 신임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제퍼슨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고 나머지 임명장을 전달하지 말 것을 명령했죠.

겨우 몇 시간 차이로 판사 임명을 못 받은 억울한 사람들 중엔 윌리엄 마버리(Marbury)도 있었어요. 그는 행정부에 자신의 임명장을 전달하라고 명령해달라는 소송을 연방대법원에 제기했습니다. 당시 연방대법원장을 맡고 있던 존 마셜은 머리가 복잡해졌죠. 제퍼슨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으니까요.

마셜 대법원장은 한 가지 묘수를 짜냈는데요. 일단 마버리의 주장이 맞는다고 판단했답니다. 사법부법에 의하면 임명장을 강제로 전달하라는 권한이 연방대법원에 있으니 소송이 제대로 제기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애당초 임명장 강제 전달 권한을 연방대법원에 부여하는 법이 헌법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법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어찌 보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대법원장의 고육지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판결은 훗날 헌법재판소의 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 됐습니다. 사실상 유명무실하다시피 했던 헌법을 최고의 법으로 선언한 사건이었고, 이를 계기로 '사법심사', 즉 위헌법률심판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곽한영·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