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화폐로 세상 읽기] "여긴 백인석이다"에 저항… 32세 미용사가 세상을 바꿨다

입력 : 2020.09.22 03:30

캐나다 10달러의 '비올라 데즈먼드'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는 화폐의 주인공으로 역대 남성 총리들과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을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8년 캐나다 중앙은행이 '캐나다 10달러' 지폐에 비올라 데즈먼드(1914~1965) 를 넣겠다고 발표했어요. 중앙은행이 10달러 지폐 인물로 들어갈 여성을 선정하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올라 데즈먼드가 선정된 거죠. 기존 10달러 인물은 캐나다 초대 총리인 존 알렉산더 맥도널드였는데, 처음으로 여왕이 아닌 일반인 여성, 그것도 흑인 여성이 화폐의 주인공이 된 거예요.

캐나다 10달러 지폐의 앞면이에요. 오른쪽 사진은 비올라 데즈먼드가 젊은 시절 미용실에서 일하던 모습이에요. /세계화폐연구소·뱅크오브캐나다
캐나다 10달러 지폐의 앞면이에요. 오른쪽 사진은 비올라 데즈먼드가 젊은 시절 미용실에서 일하던 모습이에요. /세계화폐연구소·뱅크오브캐나다
◇"흑인은 2층 좌석으로 올라가라"

비올라 데즈먼드는 캐나다 흑인 인권 운동에 기여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 인물이에요. 데즈먼드는 1914년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10명의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어요. 그는 흑인 여성을 위한 피부·모발 미용 화장품 판매사업을 하며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1946년 32세의 데즈먼드는 미용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출장을 가던 중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고 해요.

자동차가 수리되는 동안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그는 1층 관람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던 중 안내원으로부터 '2층으로 가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당시 캐나다 극장은 좌석이 '흑인석'과 '백인석'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백인석은 1층에, 흑인석은 2층에 있었는데 데즈먼드가 이 규칙을 어긴 셈이었죠. 데즈먼드는 매표소로 가서 '시력이 나쁘니 1층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며 1층 관람표를 사겠다고 했다고 해요. 하지만 매표소 안내원은 "1층 좌석은 흑인에게 팔수 없다"고 답했죠. 부당한 차별에 분노한 그는 1층으로 가 영화를 관람했고 결국 경찰에 체포됐어요.

경찰에 끌려간 그녀는 '세금 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유죄 선고를 받았답니다. 세금 포탈 혐의란 1층 백인석이 2층 흑인석보다 1센트나 비싼데 2층 표를 가지고 비싼 백인석에 앉았으니 1센트의 세금을 안 낸 것이 된다는 거예요. 캐나다 법원은 그에게 20달러 벌금형을 내렸죠.

◇인권 운동가로 변신해

데즈먼드는 이 같은 인종차별적인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후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각종 차별 속에 살던 많은 흑인에게 용기와 도전의식을 심어주었어요. 많은 인권 단체가 여기에 호응했죠.

심지어 데즈먼드의 저항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로자 파크스의 '몽고메리 버스 안 타기 운동'(1955년)보다 무려 9년이나 앞선 것이었어요. 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백 인종 분리 버스'를 타고 가던 로자 파크스란 흑인 여성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뒤 흑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불복종 운동을 말해요.

데즈먼드가 세상을 떠나고 45년이 지난 후인 2010년, 캐나다 주정부와 법원은 뒤늦게 데즈먼드의 세금 포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과거 그를 기소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국제은행권협회는 데즈먼드의 얼굴이 들어간 이 지폐를 '2018년 올해의 지폐'로 선정하기도 했죠.

화폐 뒷면에는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시에 있는 국립 인권 박물관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와 르완다 대학살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 세계 최대 인권 박물관입니다.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