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레코딩만이 최고의 음악 들려줘"… 무대 거부했던 '괴짜 피아노맨'

입력 : 2020.09.08 03:30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코로나 유행으로 연주자들이 청중과의 교감 없이 마이크나 카메라 앞에서 홀로 연주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독한 작업을 한창 인기가 오르던 30대 초반에 선택한 음악가가 있는데요. 콘서트 무대에서 은퇴한 후 오직 음반 작업과 영상으로만 청중과 만나며 자신의 예술을 가꿔나갔던 이 음악가는 20세기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랍니다.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서 태어난 글렌 굴드는 세 살 때부터 악보를 익히고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천재 소년이었어요. 열 살 때 토론토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와 오르간, 음악 이론을 함께 공부한 그는 14세에 토론토 심포니와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며 정식으로 데뷔했어요.
글렌 굴드는 32세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18년간 오직 음반 작업과 영상으로만 청중과 만났어요. /위키피디아
글렌 굴드는 32세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18년간 오직 음반 작업과 영상으로만 청중과 만났어요. /위키피디아
당시 클래식 음악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었던 캐나다 출신의 젊은 연주자가 단숨에 스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1955년 컬럼비아 레이블에서 녹음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에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굴드를 보고 놀란 프로듀서가 당장 계약을 추진했고, 그해 6월 뉴욕 CBS 스튜디오에서 역사적인 녹음이 이루어졌어요. 결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완벽한 건반 터치와 유연한 기교, 특유의 집중력이 함께한 연주도 탁월했지만 굴드의 독특한 녹음 전후 모습도 여러 가지로 화제를 낳았어요.

매우 까다롭고 예민했던 굴드는 더운 여름에도 코트와 머플러, 장갑을 준비한 채 스튜디오에 도착해 난방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기존의 피아노 의자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준 아주 키가 작은 의자에 앉아 연주를 이어나갔어요. 녹음 당시 연주하지 않는 손을 마치 지휘하듯 흔들며 눈을 감은 채로 몰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장면을 앨범 재킷으로 삼은 음반은 발표되자마자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 정상급 지휘자들과 협연하며 주가를 올리던 굴드는 32세 되던 1964년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콘서트 무대에서 은퇴하고 오직 음반 발표로만 활동하겠다는 것이었죠. 굴드는 이른바 '집단으로서의 청중'에 거부감을 표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 콘서트홀에 들어찬 3000명 가까운 청중에게 보여주는 해석은 나의 의도와 어긋난 과장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같은 곡들을 연주하는 일도 내겐 힘든 일이고요. 이상적인 음악은 청중에게 명상의 순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인데, 음악회장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죠." 굴드는 '최고의 해석'이 나타나는 순간을 포착해 남기는 레코딩이야말로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대 은퇴 이후 발표한 굴드의 음반들은 많은 고민과 세심한 편집으로 만들어져 모두 높은 완성도를 지닌 걸작들입니다. 바로크 시대 초기 작품이나 20세기 곡들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주 분야는 역시 바흐였죠. 굴드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81년 재녹음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비롯해 프랑스 모음곡, 영국 모음곡, 파르티타, 토카타 등 건반 악기를 위한 바흐 작품들에 대한 핵심을 찌르는 해석을 남겼는데요. 이 곡이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 하프시코드(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건반악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란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작곡가의 창작 의도를 훌륭히 살려내고 있습니다.

"창조성은 고독을 통해 커진다"는 원칙을 모토로 외로운 작업을 스튜디오에서 이어갔던 굴드는 심한 강박증과 신경쇠약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 남용으로 건강을 잃었고, 결국 1982년 50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