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 1년에 55㎞씩 서쪽으로 이동한대요

입력 : 2020.08.13 03:00

자북극(磁北極)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구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어요. 미국 리즈대학의 크리스토퍼 데이비스 교수팀이 지구 자기장의 북극인 자북극(磁北極)이 거꾸로 뒤바뀌는 역전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거예요. 자북극이 역전된다니 무슨 말일까요? 오늘은 지구 자기장과 자북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외핵의 대류 현상이 만드는 지구 자기

먼저 지구 자기(지자기)는 어디서 만들어질까요? 지구의 '외핵'이에요. 지구는 가장 안쪽으로부터 내핵, 외핵, 맨틀, 지각까지 순서대로 쌓여 있어요. 가장 바깥쪽에 있는 '지각'은 우리가 서 있는 단단한 땅을 가리키죠. 그 아래 지하 2900㎞까지는 두꺼운 '맨틀'이 있고, 그 밑에는 '핵'이 있습니다. 핵은 다시 외핵과 내핵으로 나뉘는데, 외핵은 철 같은 금속이 액체처럼 흐르는 상태이고 내핵은 아주 딱딱한 금속 고체예요. 내핵이 '철 덩어리'라면 외핵은 '쇳물'이라 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과학]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 1년에 55㎞씩 서쪽으로 이동한대요
/그래픽=안병현
외핵은 뜨거운 열로 위아래 온도와 밀도 차이가 생겨요. 그 차이로 대류 운동이 일어나 전류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자기장을 형성하죠. 보통의 막대자석처럼 지자기는 S극(자남극)과 N극(자북극)을 형성한답니다. 다만 지구 자전축과 자기장축은 약 11도 정도 어긋나 있기 때문에 지리상의 북극과 지자기 북극이 일치하진 않아요. 그래도 대체로 현재 N극은 북극 방향, S극은 남극 방향을 가리키고 있죠.

신기한 건 지구 자기장의 방향이 지금과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즉, 지구의 자북극과 자남극이 방향을 완전히 반대로 바뀌어, 나침반의 N극이 남쪽을 가리키고 S극이 북쪽을 가리킬 수 있다는 거죠. 이를 '지자기 역전'이라고 합니다.

지자기 역전은 45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여러 차례 발생했어요. 과학계에선 적어도 200~300회 이상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과거 암석이나 퇴적물의 모양을 관찰하면 퇴적 당시 지층의 연대와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해요.

가장 최근엔 78만 년 전 역전 일어나

가장 최근에 지자기 역전이 벌어진 때는 약 78만 년 전이에요. 이후 지자기 역전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자기 역전의 주기는 일정하지 않은데, 78만 년 이전에는 통상 20만~30만 년 주기로 자기장의 남북이 뒤바뀌었다고 해요. 그에 비하면 오늘날 인류는 비교적 오랫동안 자기장이 역전되지 않는 지질 시대에 살고 있는 거예요.

그동안 학계에서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과 남쪽이 완전히 위치를 바꾸는 데 5000~2만 년이 걸리는 것으로 보았어요. 실제 78만 년 전 마지막 극반전 때도 약 2만2000년이 걸렸다고 해요. 하루아침에 자남극과 자북극의 위치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이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바뀌는 거죠.

그런데 최근 미국 데이비스 교수팀은 지자기 역전에 걸리는 시간이 종전 예상보다 10~100배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답니다. 연구팀이 지난 10만 년 동안 일어난 자기장 관측 데이터를 이용해서 자기장의 움직임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했어요. 그랬더니 지구 자기가 한 번 역전하는 데 걸리는 최장 시간이 과거 추정했던 최장 시간(2만년)보다 훨씬 짧은 200~2000년 정도라는 걸 밝혀낸 거예요. 외핵이 급격히 요동칠 경우 금속 액체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지자기 역전이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죠.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북극

최근 과학자들은 지자기 역전 징후들을 잇따라 포착하고 있어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자북극의 빠른 움직임입니다. 외핵의 액체는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자북극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매년 끊임없이 움직여요. 1831년 첫 발견 당시 자북극은 캐나다 북쪽에 있었는데요. 지금은 첫 발견지보다 북서쪽으로 1000㎞쯤이나 떨어진 캐나다 북서쪽의 엘리프 링스섬에 있다고 해요. 더구나 과거엔 연평균 12㎞ 속도로 천천히 움직였지만 1970년대부터는 연평균 55㎞씩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속도로 계속 이동한다면 50년 후 자북극의 위치는 아예 시베리아 쪽으로 옮아가게 될 것이라고 해요.

지구 자기장의 세기가 약해지고 있는 것도 지자기 역전의 징후 중 하나입니다. 과학자들은 1831년부터 자기장 세기가 매년 조금씩 약해져 190년 동안 약 15% 쇠약해졌다고 분석하고 있어요.

물론 이런 가정이 기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자기 역전 주기는 일정하지 않아서 몇몇 징후가 있더라도 쉽게 역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볼 때 1000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역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적도 있었거든요. 자기장은 언제든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지구 자기장은 지구를 지켜주는 투명 보호막 역할을 해요. 그런데 자기장의 세기가 약해지고 지자기 역전이 일어나면 보호막의 두께가 약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예를 들어 지구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태양풍(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우주 방사선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별다른 영향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건 지구 자기장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자기장이 갑자기 약해지면 사람이 방사선에 직접 노출돼 암이나 유전적 변이가 발생할 수 있고 생태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해요. 또 자기장에 따라 움직이는 철새 떼가 방향을 잃거나 비행기 항법 시스템 등이 오작동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