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사막의 여우'로 불린 독일의 영웅… 히틀러 지시로 자결했죠

입력 : 2020.08.12 03:09

에르빈 롬멜

지난달 독일 남부 하이덴하임시에 있는 '나치 시대 전쟁 영웅' 에르빈 롬멜(1891~1944) 장군의 기념비 앞에 한쪽 다리가 잘린 '지뢰 피해자'를 표현한 높이 140㎝짜리 검은색 금속 조각상(像)이 세워졌어요. 롬멜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공적으로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은 군인으로 손꼽히지만, 동시에 지뢰 매설로 인명 피해를 키워 비판을 받는 인물인데요. 이 때문에 롬멜의 고향인 하이덴하임에선 그의 공(功)과 과(過)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이런 조각상을 세웠답니다. 오늘은 '사막의 여우'라 불렸던 롬멜 장군에 대해 살펴볼게요.

1차 세계대전에서 최고 훈장받아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롬멜 장군은 1910년 독일 보병사단에 사관 후보생으로 들어가면서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12년 장교가 된 그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때 소위로 참전하며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웠어요. 그는 타고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여러 공을 세웠는데요. 1917년 10월 알프스의 요새 마타주르산에서 고작 15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군 약 1만명을 상대로 기습 공격을 단행해 대승을 거두었어요. 이 전투로 롬멜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로부터 '푸어 르 메리테(Pour le Mérite)'라는 최고 훈장을 받았습니다. 롬멜은 이 훈장을 평생 간직하고 다녔다고 해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작전을 짜고 있는 롬멜(가운데) 장군의 모습이에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과 싸웠던 롬멜 장군은 대담한 기습 공격으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작전을 짜고 있는 롬멜(가운데) 장군의 모습이에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과 싸웠던 롬멜 장군은 대담한 기습 공격으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위키피디아

교육자로서도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사관학교에서 예비 군인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요. 1937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전투 경험과 그의 군사 철학을 담은 교본 '보병 전술(Infantry Attacks)'을 출간했어요. 그의 첫 번째 전투 이야기와 부상 경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술 등 생생한 전투 일지(日誌)가 기록되어 있지요. 이 시기 롬멜은 전후 나치스 운동에 흥미를 가지게 됐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엔 총통 본부 경호부대 사령관, 즉 히틀러의 경호대장으로 임명됐지요.

영국군 몰아 세웠던 '사막의 여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롬멜은 폴란드, 체코 등을 침공하는 데 앞장섰어요. 1940년에는 프랑스를 점령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이름을 날립니다.

1941년 롬멜은 북아프리카 리비아 일대에서 영국군에 패배해 수세에 몰리고 있던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한 아프리카 군단 지휘관으로 파견되었어요. 당시 나치는 같은 편(추축국)이던 이탈리아군이 북아프리카에서 밀릴 경우 이탈리아 지도자 무솔리니의 입지가 흔들리고 독일-이탈리아 연합이 위협을 당할 것이라고 봤다고 해요.

롬멜은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대담한 기습 공격으로 영국군의 진군을 막아내며 '사막의 여우(the Desert Fox)'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그는 승리를 위해 다양한 기만전술(상대편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전술)을 사용해 주목을 끌었어요. 독일 전차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트럭에 나무판자를 이어 붙여 '위장 전차'를 만들었고, 사막 위에서 '위장 전차'로 먼지바람 일으키며 영국군을 기만했지요. 영국군은 이런 기만전술 때문에 독일의 전차 부대 규모가 매우 거대한 줄 알고 후퇴하기도 했다고 해요.

독일 군대의 수장이었지만 롬멜은 아군과 적군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장군이었습니다. 부하들에게 항상 예의 바르게 대했고, 포로들이나 점령지 주민에게도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해요. 독일에선 그를 '민족 영웅'으로 추앙했고 나치는 '우리의 롬멜'이라는 찬양 군가까지 만들었지요. 적이었던 연합군 측 지도자였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1942년 의회 연설에서 "전쟁의 참상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평가를 해도 된다면, 나는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1942년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은 이집트 북서부 알알라메인에서 영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병력과 보급품 부족으로 열세에 있던 롬멜은 고군분투했어요. 하지만 결국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군에 패배해 튀니지로 후퇴해야 했지요.

1944년 히틀러 지시로 자결

1944년 7월 20일 독일에서 반(反)나치스 세력이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운 좋게도 히틀러는 살아남았고, 나치는 암살 계획에 가담하거나 동조했던 자들을 모두 처형했어요.

당시 롬멜은 전쟁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요. 조사 결과, 그가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주동자들과 접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하지만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롬멜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데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롬멜에게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명령했지요. 실제 롬멜이 히틀러 암살 계획에 적극 가담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롬멜은 히틀러의 자살 명령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떠났답니다. 롬멜이 죽자 히틀러는 대중에 '롬멜이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이 악화돼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그의 장례식은 독일 국민의 애도 속에 국장(國葬)으로 치러졌어요.

이후 롬멜은 '롬멜 신화(Rommel myth)'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구에서 높이 칭송됐어요. 특히 연합국 측은 서독을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롬멜을 '나치에 희생된 천재적인 군인'이라며 찬양했지요. 하지만 일각에선 롬멜의 군인으로서 능력이 다소 과대평가됐다는 비판도 있답니다.

[롬멜이 만든 '악마의 정원']

이집트 알알라메인에서 영국군에 패배해 후퇴하던 롬멜 군대는 리비아와 이집트 사이 서부 사막에 대량의 지뢰를 심었는데요. 지뢰밭의 넓이가 무려 2600㎢에 달했고, 매장된 지뢰만도 약 1700만개에 달했다고 해요. 이 지뢰로 3000여명이 숨지고 7500여명이 장애인이 됐다고 합니다. 이곳엔 아직도 터지지 않은 지뢰가 매장돼 있어서 '악마의 정원(Devil’s garden)'이라고 불려요.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