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지름 1.8m짜리 왕관, 원통 가리개 매단 식당… 톡톡 튀는 거리 두기 방법이죠

입력 : 2020.08.12 03:05

코로나 시대의 디자인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 계속되면서 전 세계 누적 확진자 수가 2000만명을 넘어섰어요. 올 초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많이 퍼지는 대역병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디자이너들은 감염 우려를 줄여주는 '비접촉을 위한 아이디어'를 속속 내놓고 있답니다.

지난 4월 독일 베를린시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탈 때 마스크 사용을 의무화했어요. 이에 착안해 독일 디자이너 그룹인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는 SF(공상과학) 영화에 나옴 직한 동그랗고 투명한 플라스틱 마스크 디자인을 제안해 화제를 모았답니다. '아이스피어(iSphere)'라 이름 붙인 이 헬멧은 투명한 반구(半球·구의 절반)형 플라스틱 두 개를 이어 붙인 뒤 머리 크기만큼 구멍을 내어 착용하는 거죠.
쓰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2m 거리 두기’가 되는 버거킹의 왕관 모자와, 서로 침 튀기지 않고도 수다를 떨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원통형 가리개 ‘플렉스잇’이에요.
쓰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2m 거리 두기’가 되는 버거킹의 왕관 모자와, 서로 침 튀기지 않고도 수다를 떨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원통형 가리개 ‘플렉스잇’이에요. /버거킹·Christophe Gernigon Studio

사실 마스크는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아시아에선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이었지만, 서구 유럽에선 전염병 환자만 쓰는 물건이란 선입견이 있었어요. 특히 타인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아이스피어는 침이 튀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안을 제안한 셈이에요. 또 디자이너들은 홈페이지에 아이스피어 제작 방법을 공개해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해요.

손을 통한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주는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기업이 만든 '하이진 핸드(Hygiene Hand)'는 공공의 손길이 닿는 물건을 이용할 때 유용한 도구인데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거나 화장실 문고리를 열 때처럼 아무리 손을 씻어도 불가피하게 공공기물을 이용해야 할 때가 있죠. 하이진 핸드는 항균 효과가 있는 구리·아연으로 만들어져서 제품을 따로 닦을 필요도 없다고 해요. 또 휴대 가능한 사이즈라 인기가 높다고 해요. 디자이너 마크 세나르는 문고리를 잡아당기거나 마트 카트를 밀 수 있는 고리 형태의 3D 프린팅 손잡이를 내놔 주목받았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빠뜨릴 순 없죠.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고 대화하는 식당은 특히 감염 우려가 높은데요. 독일 버거킹은 대기 줄에 서 있는 고객들에게 지름 1.8m짜리 커다란 종이 왕관을 나눠줘서 큰 화제가 됐답니다. 왕관만 쓰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2m 거리 두기를 할 수 있게 한 유쾌한 아이디어였죠.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게르니곤은 식당 테이블 위쪽에 조명처럼 설치하는 투명한 원통형 가리개 '플렉스잇'을 제안했어요. 비행기 유리창에 쓰이는 특수 투명 아크릴인 플렉시 글라스로 원통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침 튀길 걱정 없이 대화하고 밥도 먹을 수 있게 한 디자인이죠. 실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수변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은 테이블마다 온실을 연상시키는 유리 캡슐 공간을 제작해 내놨는데요. 암스테르담 운하의 정취를 느끼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모든 예약이 조기 마감된다고 해요.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