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인간의 위대함과 연약함 동시에 말해주죠

입력 : 2020.08.05 03:00

팡세

나무는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지만, 인간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위대하다.

17세기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파스칼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이 그의 지혜와 사색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는데, 이것을 책 한 권으로 묶어 1670년 출간한 책이 '팡세'입니다.
17세기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파스칼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이 그의 지혜와 사색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는데, 이것을 책 한 권으로 묶어 1670년 출간한 책이 '팡세'입니다. /위키피디아
혹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17세기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이 '팡세(Pensées)'에서 한 말이에요. 프랑스 사상사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로 꼽히는 '팡세'의 원래 제목은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씨의 팡세'였습니다. 요즘 긴 말을 짧게 줄이는 말이 유행인데, 당시 사람들도 이를 줄여서 '팡세'라고 부르면서 지금처럼 굳어졌어요.

'팡세'는 프랑스어로 사상, 생각, 회상, 금언, 혹은 사색집이라는 뜻입니다. 파스칼이 1662년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이 그의 지혜와 사색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는데, 이것을 책 한 권으로 묶어 1670년 출간한 책이 '팡세'예요. 그래서 '팡세'를 파스칼의 유고집이라고 말합니다.

'팡세'에는 짧은 글(단장·斷章)이 모두 924편 실려 있어요. 핵심 주제는 기독교를 옹호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기독교의 위상은 서서히 추락했는데, 파스칼은 인간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면서 오히려 모든 사람이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원했어요.

1670년 출간된 '팡세' 표지예요.
1670년 출간된 '팡세' 표지예요. /위키피디아
실제 '팡세'의 대부분은 자신이 기독교 하느님을 인정하게 된 계기와 그를 둘러싼 고민 과정을 정리한 것이에요.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인간 이성에 대한 자각이 커진 터라 '팡세'는 출간 초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파스칼이 인간으로서 자아와 이성을 내내 강조한다는 사실이에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 파스칼이 보기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생각', 즉 '사유'하기였어요. "우리의 모든 존엄은 사고(思考)에 있다. 거기서 우리를 드높여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위대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죠.

이처럼 인간 자아와 이성을 강조한 것은 사실 파스칼의 수준 높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을 근간으로 한 계몽사상이 발달한 시대이니만큼, 그 이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기독교 교리가 이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팡세'는 후대로 갈수록 인간 이성과 자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밝혀낸 교과서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어요. 인간 이성은 물론 보편적 심리까지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인간 정신을 '매우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업신여김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분노합니다. 그래서 인간 정신이 매우 위대하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파스칼은 주장해요. 그 인간 이성의 가치는 신이 보증하고 있다는 거예요.

'팡세'는 그 뜻을 한 번에 파악하면서 읽기 상당히 어려운 책입니다. 그럼에도 '팡세'가 고전(古典)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의의, 즉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올바른 사유'를 할 수 있는 우리 모습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장동석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