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1만년 전 가축 길러 젖을 짠 인류… 건조지대서 살아남는 전략이었죠
우유가 만든 세계사
히라타 마사히로 글|김경원 옮김|돌베개|200쪽|1만2000원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루에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우유를 먹게 됩니다. 우유, 요구르트, 버터, 치즈 등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에요. 과자나 빵, 피자, 아이스크림엔 꼭 들어가 있죠. 더구나 요즘엔 떡볶이, 치킨, 라면, 심지어 등갈비 같은 음식에도 치즈를 넣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우유의 세계사'도 아니고 '우유가 만든 세계사'예요. 인류 역사에 우유는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저자는 약 1만년 전 인류가 다른 포유류를 가축으로 삼아 기르기 시작한 이유를 우유 같은 유제품에서 찾습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냥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을 텐데, 우리 선조들은 순한 포유류를 잡아놓고 새끼를 낳게 하면서 끈기 있게 키워냈습니다. 매일매일 젖을 짜내면서요. 척박한 환경에서 고기보다 안정적인 식량이 필요했던 인류에게 젖은 그야말로 가장 좋은 먹을거리였던 거죠. "가축이라는 밑천을 그대로 두고 젖이라는 이자를 이용해 살아남는 생존 전략"인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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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베개 제공
농학박사인 저자는 20대 젊은 시절 시리아 국제건조지농업연구센터 청년해외협력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유제품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후 세계 곳곳의 유제품 음식 문화를 찾아다니며 연구했다고 해요. 직접 찾아가서 먹어보고 마셔보고 만들어본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유럽의 유제품에 익숙하지만, 사실 유제품을 일찌감치 잘 활용했던 것은 서아시아, 남아시아, 북아시아 등 건조지대였습니다. 인도는 과일즙을 이용해 응고시킨 치즈나 요구르트(농축유)를 만들었습니다. 목축문화와 농경문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환경, 열대 습윤 기후가 풍성한 유제품 문화를 만들어낸 거죠. 반면 몽골에서는 추위를 이용해 크림을 분리하는 유가공이 발달했어요. 동유럽에는 서늘한 날씨와 높은 습도를 이용한 단단한 숙성 치즈가 탄생했다고 해요. 사람들이 이 귀한 음식을 얼마나 알뜰살뜰히 이용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사실 사람들이 유제품을 즐겨 먹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송아지나 어린 염소가 먹는 음식을 다 성장한 사람이 빼앗아 먹다 보니 우유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젖당불내증'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유제품을 일찌감치 먹었던 덕에 인류는 지금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젖을 내어준 가축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