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전자 기타로 연주하는 18세기 바로크 음악을 들어보셨나요

입력 : 2020.08.01 03:05

록과 클래식의 협연

예전에는 '음악 애호가'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를 콕 집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체로 자신의 귀에 멋지게 들어오는 음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음악을 연주하거나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다른 것들이 어우러지는 흥미로운 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색적인 음원을 하나 발표해 화제가 됐는데요.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K팝 걸그룹 레드벨벳의 히트곡 '빨간 맛'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해 녹음한 것이죠.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음악회에서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인기 절정 아이돌 노래를 거의 원곡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이었어요.

지난 20세기에도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여러 방법으로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대중음악인들과 협업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의외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많았어요. 록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만남도 그중 하나랍니다.

◇로열 필과 만난 '딥 퍼플'

영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가 '딥 퍼플(Deep Purple)'입니다. 1968년 처음 앨범을 낸 뒤 1976년 돌연 해체를 선언하며 활동을 중단했지만 1984년 재결성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원한 현역'이죠.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부각하는 크고 공격적인 사운드가 특징인 '정통 하드록'을 추구하는 밴드인데, '스모크 온 더 워터' '하이웨이 스타' 등 록음악 팬이 아니더라도 한번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히트곡을 무수히 만들어냈습니다.

딥 퍼플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연주자가 거쳐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중 리치 블랙모어(기타)는 클래식 기타와 첼로를 즐기는 클래식 애호가였고, 존 로드(건반)는 애초부터 피아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음악인 출신이었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딥 퍼플은 클래식 음악과 실험적인 접목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대표적인 이벤트가 1969년 런던 로열앨버트홀에서 열린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어요. 여기서 딥 퍼플은 로열 필과 함께 존 로드가 작곡한 '그룹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50분 넘게 이어지는 대곡인 이 작품은 빠름-느림-빠름의 세 악장 형태로, 긴 카덴차(악장 마지막 부분에 연주되는 무반주 독주)를 드럼으로 연주하는 등 클래식 협주곡의 구성을 그대로 따랐어요.

당시 이 협연은 막 활동을 시작한 젊은 록 밴드의 파격적인 음악적 모험이었답니다. 그리고 정확히 30년 후인 1999년, 딥 퍼플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똑같은 곡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지요. 원곡자인 존 로드가 협주곡의 원래 악보를 분실했는데, 팬들의 도움으로 작품을 재구성해서 역사적인 재공연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해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 록의 야성이 조화

독일의 하드록 밴드로 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은 '스콜피언스'도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멋진 협연을 남겼습니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죠. 그들의 라이브 공연은 2000년 6월 독일 하노버 엑스포 전야제에서 이루어졌는데요. 스콜피언스가 무대 앞에 자리 잡고 그 뒤를 오케스트라가 병풍처럼 감싼 구도도 인상적이었지만, 평소 클래식 무대에 익숙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강한 록 음악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자유분방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라이브 음원과 영상으로도 남아있는 이 공연에서 스콜피언스와 베를린 필은 '록 유 라이크 어 허리케인' '윈드 오브 체인지' '스틸 러빙 유' 등 친숙한 히트곡들을 연주했어요.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우면서 웅장한 소리와 일렉트릭 기타의 강렬한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멋진 공연이었죠.

지난해 9월 미국 샌프란시코에서 열린 ‘S&M(심포니와 메탈리카) 2’ 공연 모습이에요. 1999년 미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와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가진 협연의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는데, 스래시메탈(헤비메탈 중 가장 템포가 빠르고 공격적인 소리를 내는 장르) 밴드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만나 개성 있는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답니다.
지난해 9월 미국 샌프란시코에서 열린 ‘S&M(심포니와 메탈리카) 2’ 공연 모습이에요. 1999년 미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와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가진 협연의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는데, 스래시메탈(헤비메탈 중 가장 템포가 빠르고 공격적인 소리를 내는 장르) 밴드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만나 개성 있는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답니다. /메탈리카(Photo by Jeff Yeager)

미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 역시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역사적인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메탈리카의 음악적 근거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S&M'(심포니와 메탈리카)이라는 제목으로 1999년 4월 협연을 가진 건데요. 이 공연은 스래시 메탈(헤비메탈 중 가장 템포가 빠르고 공격적인 소리를 내는 장르) 밴드가 우아한 오케스트라와 만나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는지 잘 보여준 사건이었어요. 지휘자 마이클 케이멘이 이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은근하게 메탈리카가 만들어내는 격렬한 리듬과 어울렸답니다. 지난해 9월 이 공연의 20주년을 기념하는 'S&M 2' 공연이 있었는데, 당시 실황이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봄 국내에도 소개됐죠.

스웨덴 출신의 명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57)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빠른 연주로 유명한 말름스틴은 어려서 바흐와 비발디 등 바로크 음악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요. 1998년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 모음곡 E플랫 단조'를 작곡해 체코 필하모닉과 협연했고, 2002년 일본의 뉴재팬 필과도 라이브 공연을 펼쳐 화제를 낳았어요. 모두 열두 악장으로 되어있는 그의 작품은 프렐류드(전주곡), 토카타(건반악기를 위한 즉흥곡), 사라방드(3박자의 느린 춤곡) 등 17~18세기 바로크음악 시대 모음곡에 쓰이는 이름들이 등장해요.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는 바로크 모음곡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연주자 수십 명이 모여 만드는 오케스트라의 거대하고 폭넓은 음향과 록 밴드의 야성적인 울림은 이질적이면서도 어쩐지 공통분모가 많은 것 같아요. 미지의 색다른 음악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들이 펼친 협연은 특별한 음악적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관현악과 첫 협연한 '무디 블루스']

최초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록 밴드는 영국의 '무디 블루스'라고 합니다. 1967년 발표된 무디 블루스의 앨범 '데이스 오브 퓨처 패스트(Days Of Future Passed)'는 록과 오케스트라 협연의 기원을 이루는 작품인데요. 이 앨범에서 무디 블루스는 런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모티브로 한 음악을 연주했어요. 록과 클래식의 조화를 훌륭히 이뤄낸 첫 시도로 평가돼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