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지어진 12층짜리 아파트가 시초예요

입력 : 2020.07.29 03:00

고층 아파트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과 부동산 정책이 큰 화제입니다.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자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황 구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파트는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이 살고 있는 주택 유형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아파트는 도대체 언제 생긴 것일까요?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지어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총 337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서민용 공동주택이에요.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지어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총 337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서민용 공동주택이에요. /위키피디아
아파트는 한 건축물에 여러 가구가 독립적으로 사는 주거 형태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가구가 넘는 5층 이상의 공동주택이 해당돼요. '아파트의 조상'이라 볼 수 있는 공동주택은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갑니다. 안뜰을 둘러싼 'ㅁ'자 모양의 다층 건물인 '인술라'인데 주로 중하층 주민들이 거주했어요. 1층을 상가로 쓰고 2층부터 사람이 거주하는 형태가 마치 오늘날 상가 주택과 비슷하죠.

역사적으로 다층형 공동주택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예멘의 시밤입니다. 동서 교역의 요충지로 수백 년간 번영을 누린 이 도시는 16세기에 흙벽돌로 지은 5~11층 높이 건물들 500여채가 이색적이랍니다. 16세기 중반 큰 홍수가 나면서 집 짓고 살 땅이 부족해지자 이 같은 집을 지었다고 해요. 그래서 '사막의 맨해튼'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19세기 중반 새롭게 도심을 정비한 프랑스 파리에도 층마다 여러 독립 가구가 사는 5~8층짜리 공동주택이 빼곡히 들어찼는데요. 이런 공동주택의 꼭대기 옥탑방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며 예술혼을 불태우곤 했죠.

오늘날 아파트의 개념은 1927년 처음으로 등장했어요. 독일 슈투트가르트시 요청으로 독일 미술·공업·수공예 전문가들이 설계한 '바이센호프 주택 단지'입니다. 독일의 건축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를 중심으로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한스 샤룬 등 당대 내로라하는 건축가 17명이 유리와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공동주택을 지었습니다. 특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공동주택은 오늘날 우리나라 저층 아파트와 외관상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아주 유사한데, 그는 이 주택을 공개할 때 이렇게 외쳤다고 해요. "여기에 설계한 것은 집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다!"

이 기세를 몰아 르 코르뷔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현대 고층 아파트의 기원이 된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설계합니다.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지어진 이 12층짜리 건물은 총 337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서민용 공동주택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여러 커뮤니티 시설을 통해 구성원들이 편리하게 생활하는 데 초점을 두었는데요. 총 23가지 타입으로 나눈 주거 공간과 옥상 정원, 수영장 등 커뮤니티 시설 등이 지금 보아도 무척 현대적이에요.

하지만 사실 서구 유럽에서 아파트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어요. 서민을 위한 임대 주택용으로 짓다 보니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슬럼화도 진행됐거든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의 위상은 정반대입니다. 최초의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인 서울 마포아파트(1962년)는 개별 보일러와 수세식 변기를 갖추고 단지 내 녹지에도 신경을 쓴 고급 주택을 표방했어요. 이후 1960년대 세운상가, 유진상가 등 주상복합 아파트에 고위 관료와 재력가, 연예인 등이 거주하면서 '아파트=고급'이란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이후 한강 개발과 맞물려 1970년대 한강변에 중산층을 위한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고 이후 서울 강남, 잠실, 과천, 목동 등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졌답니다. 바야흐로 "아파트 공화국"(프랑스 사회학자 발레리 줄레조)이 된 거예요.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