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예술의 도시'를 등진 화가들… 모네는 수련만 250점 그렸죠

입력 : 2020.07.25 03:05

'모네에서 세잔까지' 展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계곡이나 바닷가로 휴가를 떠납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 시민들은 휴가철이면 여기저기로 휴가를 떠나서 파리 도심이 텅텅 빌 정도였어요. 그래서 휴가를 바캉스(vacance·비어 있음)라고 불렀지요. 물론 바캉스는 달력에서 일정을 모두 비워내고 자유롭게 보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파리는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당시 야심 있는 화가라면 대부분 파리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찾았어요. 화가들은 주로 파리의 번화가나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그렸고 밤에는 주점이나 공연장에 모인 구경꾼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지요. 하지만 파리의 화가들도 여름에는 공기 맑은 시골로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바닷가나 강가, 농촌의 여름이 이 시기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8월 30일까지 진행 중인 '모네에서 세잔까지' 전시에서는 프랑스 시골 마을 풍경 등을 그렸던 여러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이 소장한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명화 106점을 선보여요.
작품1 -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1907년.
작품1 -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1907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세기 파리는 산업화의 물결로 가득한 화려한 도시였지만, 모든 예술가에게 파리가 다 감동적인 장소였던 건 아니었습니다. 클로드 모네(Monet·1840~1926)는 시골의 삶을 좋아했어요. 그는 파리 근교의 조용한 마을인 지베르니에 정착해서 연못 위에 핀 수련과 정원을 그리며 노후를 보냈습니다. 작품1은 그가 그린 대표적인 작품 '수련 연못'입니다. 모네가 1907년 완성한 '수련 연작'의 하나로, 이 그림이 국내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에요.

평생 빛을 좇으며 그림을 그렸던 모네는 예순 살 때쯤 백내장으로 시력을 조금씩 잃어갔어요. 그는 지베르니에 정착한 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집 정원에 있는 수련만 250여 점 그렸는데요. 이 그림은 수련과 연못의 경계가 비교적 분명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모네가 완전히 시력을 잃기 전인 것 같아요. 실제로 모네의 수련 연작은 시간이 갈수록 연못과 수련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마치 추상화처럼 변해가는 걸 알 수 있는데, 앞이 보이지 않게 된 화가의 아픔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가 폴 세잔(Cézanne·1839~1906)도 절친한 고향 친구였던 에밀 졸라의 권유로 잠시 파리에 갔다가 그곳의 번잡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후부터는 예술을 하려면 파리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답니다.
(사진 왼쪽)작품2 - 폴 세잔, ‘강가의 시골 저택’, 1890년경. (사진 오른쪽)작품3 - 외젠 부댕, ‘베르크의 해변’, 1882년.
(사진 왼쪽)작품2 - 폴 세잔, ‘강가의 시골 저택’, 1890년경. (사진 오른쪽)작품3 - 외젠 부댕, ‘베르크의 해변’, 1882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세잔은 싱그러운 풀 냄새로 가득한 고향에서 지내면서 그 지역의 산과 마을을 반복해서 그리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갔어요. 작품2는 강가에 있는 시골 저택을 그린 세잔의 그림인데, 두꺼운 붓질을 차곡차곡 쌓아서 전체를 채워나가듯 그리는 세잔 고유의 작업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3은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Boudin·1824~1898)의 그림으로, 해변으로 휴가를 온 도시 사람들을 보여주네요. 하늘이 약간 탁한 것으로 보아 그림을 그린 날이 아주 맑은 날씨는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저 멀리 바다가 하늘과 맞닿은 채 펼쳐진 이 휴양지는 프랑스 북부 베르크 해변입니다. 부댕은 야외 햇빛 아래에서 그림을 그렸던 '외광(外光)파 화가'로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불렸는데요. 외광파란 태양빛 아래에서 자연의 색채를 묘사한 화가들을 말해요. 특히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에게 특히 큰 영향을 주었어요. 부댕 덕분에 모네는 햇빛의 효과를 중시하게 되었고, 햇빛 아래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의 변화를 그려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작품4 - 폴 고갱, ‘우파우파(불춤)’, 1891년.
작품4 - 폴 고갱, ‘우파우파(불춤)’, 1891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작품4는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한가운데 불을 피워놓고 주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과 그를 지켜보는 관중의 모습을 그린 장면입니다. 폴 고갱(Gauguin·1848~1903)이 그린 '우파우파(불춤)'인데, 기울어진 나무가 그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새까만 어둠 속에서 검붉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파리에서 태어난 고갱은 문명 세계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시골로 자주 이사를 다녔어요. 마흔 살이 넘어서는 아예 남대서양의 마르티니크섬, 남태평양의 타히티섬 등으로 떠나 그곳에서 현지인처럼 살기도 했지요. 말년의 고갱 작품들을 보면 열대의 이국적인 원색으로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농촌을 그저 잠시 쉬다 가는 장소로 바라보기 때문에 항상 평화롭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해요. 하지만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Pissarro·1830~1903)는 조금 달랐어요. 그는 농민들이 시골 자연 속에서 실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작품5 - 카미유 피사로, ‘아침, 햇빛 효과, 에라니’, 1899년.
작품5 - 카미유 피사로, ‘아침, 햇빛 효과, 에라니’, 1899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작품5는 피사로가 그린 시골 마을 에라니의 모습입니다. 그림 왼쪽 아래에 한 여인이 보여요. 그늘 아래 앉아 다리를 펴고 쉬는 중입니다. 농부에게 아침의 짧은 휴식은 오후에 들판에 서서 끝도 없이 펼쳐질 노동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요. 한여름 땡볕 아래 일할 농부의 마음을 생각하며, 피사로는 그림자가 흠뻑 배어 있는 듯한 촉촉한 아침 햇살을 그렸어요.

"외광 아래에서는 오직 즉각적인 인상만 잡아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눈으로 본 것이 마음으로 느낀 것과 조화를 이룬 상태이다." 피사로가 한 말이에요. 순간적으로 느낀 인상을 바로 옮겨 그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화가의 생각과 느낌까지 종합해서 나름대로 화면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이런 입장을 가진 화가들을 기존 인상주의자와 구별하기 위해 후기 인상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세잔과 고갱의 그림도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지요.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