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뱀눈박각시 날개엔 뱀눈이 있죠… 곤충들의 각양각색 생태 이야기

입력 : 2020.07.24 03:00
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이강운 지음|지오북|256쪽|1만8000원

'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
/지오북
불볕더위와 천적을 피해서 '여름잠'을 자고, 엄동설한에 부화해 영하 40도 추위 속에서 살아남는 나비가 있습니다. 환경부 1급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붉은점모시나비예요. 반투명한 흰색 날개가 속이 비치는 모시를 연상시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어요.

여름방학을 앞두고 최근 출간된 '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은 제목 그대로 곤충들의 흥미로운 생태를 들려주는 과학책입니다. 이 책을 쓴 이강운 박사는 '애벌레 아빠'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강원도 횡성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난 20여 년간 생물 연구를 하고 있거든요. 이 책에서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를 비롯해 우리나라 24절기에 맞춰 열심히 살아가는 곤충과 동물들을 관찰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높은 산에 사는 까닭에 '알파인 버터플라이'라고도 불리는 붉은점모시나비는 바람이 찬 산 정상 부근 넓고 푸른 들판에 주로 살아요. 그런데 이 나비는 호기심 가득한 장난꾸러기인가 봅니다. 들판 너머 세상이 궁금했는지, 하늘 높이 꽤 먼 거리를 이동했어요. 저자가 강원도 삼척 추동리에서 채집해 번호 '14번'을 붙인 이 나비가 무려 5.6㎞나 떨어진 지각산에서 다시 잡힌 거예요. 기존 연구 결과는 붉은점모시나비가 최대 1.5㎞까지 이동한다고 했는데, 그보다 3배 넘게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이 확인된 거죠. 사는 지역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정주성 나비'가 무려 6㎞ 가까운 먼 거리를 과감하게 이동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은 오래된 지식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 아닙니다. 이처럼 아주 최근까지 직접 관찰한 연구 성과들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곤충의 날개가 가진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곤충의 날개는 하늘을 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날개에 무늬와 색을 입혀 다채로운 패턴을 만든 것입니다. 이를 활용해 동족을 구별하기도 하고, 배우자를 만나는 열쇠로도 활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참나무산누에나방은 유난히 커다란 뒷날개를 이용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고 해요. 뱀눈박각시의 뒷날개에는 무서운 뱀 눈 모양과 똑같은 무늬가 있어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를 기겁하게 만드는 생존 기술이라고 하네요. 작디작은 곤충이지만 이들의 현명하고 강인한 생명력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져요.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