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1차대전 참호 속에서… 독일 청년들이 만났던 전쟁이라는 괴물

입력 : 2020.07.22 03:00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시(戰時)에는 우리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모든 것이 전후에 다시 깨어난 다음 비로소 생과 사의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전선에서 보낸 세월을 뒤로하고 죽은 전우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서, 누구를 향해서 진군한다는 말인가?

1929년 출간된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가장 위대한 전쟁 문학이자 진실된 기록 문학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에요. 작가 레마르크는 대학을 다니던 열여덟 살에 징집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작품 제목처럼 '서부 전선'에 배치되었습니다. 서부 전선이란 당시 독일이 프랑스와 접전을 벌이던 곳이었지요. 레마르크는 그곳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해요.

1930년 개봉한 미국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포스터(왼쪽)와 원작 소설 초판 표지예요.
1930년 개봉한 미국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포스터(왼쪽)와 원작 소설 초판 표지예요. 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은 가장 위대한 반전(反戰)문학의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위키피디아
작품 속 주인공 파울 보이머와 그 친구들은 고교생이에요. 이들은 허황된 애국심에 도취된 담임 교사 칸토레크의 강권에 못 이겨 자원입대하게 됩니다. 담임의 손에 이끌려 전쟁터에 갔지만, 마음 한구석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진실된 마음이 없진 않았어요.

하지만 전장의 공포는 애국심만으로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공포스러운, 때로는 허무한 죽음이 일상인 곳에서 청년들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 즉 먹고 배설하는 본능을 채우는 데만 몰두하는 존재들로 변해버리고야 말았지요.

중대원 150명이 전투에 투입되었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80명 남짓이었어요. 동료를 잃은 슬픔도 잠시, 남은 자들은 죽은 동료들의 몫인 '흰콩과 쇠고기' 150인분을 마음껏 먹고 만족스러워해요. 전쟁이 아니라면 "노동과 의무, 문화와 진보, 즉 미래의 세계"를 꿈꾸었을 젊은이들이 먹는 일에만 골몰하게 된 거죠. 심지어 친구가 총에 맞아 죽어 가고 있는데, 마음 아파하기보다 군용 장화를 탐내기도 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곳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일지도 몰라요.

레마르크는 작품 속에서 전쟁의 부당함을 보여주면서도 이를 정치나 국제 관계 측면에서 묘사하지 않습니다. 젊은 병사들이 국가를 욕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그 상황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지요. 레마르크가 이런 서술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기성세대의 이중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기성세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청년의 등을 전쟁터로 떠밀었지만, 오히려 젊은이들은 '전쟁이라는 괴물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미래를 잃어버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젊은이들이 인간성마저 잃어버린 채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한' 1918년 10월의 어느 날 전사합니다. 전선이 평온한데 전사하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날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는 짧은 기록만 남았어요. 꽃다운 젊은이들이 모두 죽어나갔는데도 세상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기록되는 현실이죠. 전쟁의 참상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그린 작품이 있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레마르크의 또 다른 작품 '개선문'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