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모신나강 소총·맥심 기관총… 연해주로 쫓겨온 체코군에서 구입
입력 : 2020.07.21 03:00
독립군의 소총 5만여 자루
올해는 봉오동 전투(1920년 6월)와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가 벌어진 지 100주년을 맞는 해예요. 두 전투는 우리나라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크게 이긴 대표적인 항일 전투이지요. 그런데 최근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박환 수원대 교수가 새 연구서 '독립군과 무기'를 내고 "봉오동·청산리 전투 승리의 원동력 중 하나가 독립군이 구입한 신형 무기에 있었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어요. 독립군이 상당수 무기를 러시아 연해주에서 체코군으로부터 구입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체코 군대가 대체 왜 한반도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걸까요?
◇6만 대군, 동쪽으로 탈출구를 잡다
유럽 중부 내륙에 있는 체코는 신·구교 간에 벌어진 이른바 '30년 전쟁'(1618~1648년) 이후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체코인들은 오스트리아군의 일원으로 러시아와 싸우는 동부 전선에 투입됐죠.
◇6만 대군, 동쪽으로 탈출구를 잡다
유럽 중부 내륙에 있는 체코는 신·구교 간에 벌어진 이른바 '30년 전쟁'(1618~1648년) 이후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체코인들은 오스트리아군의 일원으로 러시아와 싸우는 동부 전선에 투입됐죠.
- ▲ /그림=김영석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볼셰비키(러시아 공산당의 전신)가 정권을 장악한 것이죠. 1918년 3월 볼셰비키 정부는 지금까지 싸우던 나라들과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체코 군단은 졸지에 허공에 뜬 '무소속 군대'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자 체코 독립운동 지도부에서 지침이 내려옵니다. "서유럽 전선으로 이동하라!" 하지만 이는 체코 군단에 난감한 명령이었어요. 서쪽으로 가려면 독일군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했고, 북쪽을 통해 바닷길로 가려면 적군(러시아 혁명 세력)과 백군(혁명 반대 세력) 간 내전이 한창인 지역을 뚫어야 했지요. 그때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갑시다!"
◇체코 군단의 시베리아 횡단 '설국열차'
아마도 체코 군단은 그날의 결정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 위해선 총길이 9288㎞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인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야 했거든요.
1918년 4월 키예프에서 출발한 체코 군단은 열차 수백 량에 병력·무기·식량을 차곡차곡 실은 뒤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이 열차에는 병원, 우체국, 신문사, 은행까지 있었다고 해요. 선두에는 열차 전체를 철판으로 덮고 대포와 기관총을 장착한 '장갑열차'가 앞장섰습니다.
이들의 이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볼셰비키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총살한 것도 체코 군단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초조해서 저지른 일이란 주장도 있어요. 마침내 1918년 7월 체코 군단은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점령했습니다.
◇"독립군에게 무기를 파시오"
3개월 뒤인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다음 달엔 독일이 항복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났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던 체코 군인들에게는 고향에 돌아갈 뱃삯이 절실했지요. 그런 이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름아닌 한국 독립군이었습니다.
'나라 없이 총을 잡은 민족의 군대'라는 점에서 체코 군단과 한국 독립군 사이에는 통하는 것이 있었어요. 당시 체코 사령관 중 한 명이었던 라돌라 가이다 장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의 조국도 수백 년간 치욕을 당하다가 지금 부활했습니다. 다시 만날 때는 모두 독립국민이 돼 있길 바랍니다."
일본 측 자료에 따르면 독립군은 체코군이 쓰던 소총 5만 정 등을 사들였다고 해요. 장전이 비교적 쉬운 5연발총인 러시아 모신나강 소총, 분당 5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러시아제 맥심 기관총도 체코군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무기들은 독립군이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해요.
체코 군단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귀환했습니다. 일부는 인도양을 지나 수애즈 운하를 통과했고 일부는 태평양을 횡단해 파나마 운하를 거쳐 지구 한바퀴를 돌았죠. 이 무렵 프라하의 골동품 시장에는 난데없는 한국산 비녀·반지와 놋요강이 쏟아져나왔다고 합니다. 독립군 군자금으로 쓰라며 십시일반 정성을 보탠 우리 동포들의 피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