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I♥NY' 로고로 기억되는 미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대부

입력 : 2020.07.15 03:00

밀턴 글레이저

지난달 26일 미국 그래픽디자인계의 대부, 밀턴 글레이저(1929~2020)가 91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뉴욕의 상징 '아이러브뉴욕(I♥NY)' 로고를 만든 그의 사망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쏟아졌지요.

1929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 2세로 태어난 글레이저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했던 천생 '뉴요커(뉴욕에 사는 사람)'였어요. 뉴욕의 명문 예술학교인 쿠퍼유니언대학을 졸업한 그는 친구들과 함께 1954년 푸시핀스튜디오(Push Pin Studios)를 공동 창업하며 디자이너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기능적이고 단순 명료한 것을 중시하던 '모더니즘'의 최전성기에 푸시핀스튜디오는 정반대의 시도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밀턴 글레이저가 1977년 발표한 '아이러브뉴욕(I♥NY)' 로고(사진 왼쪽)와 1967년 디자인한 가수 밥 딜런의 포스터예요.
밀턴 글레이저가 1977년 발표한 '아이러브뉴욕(I♥NY)' 로고(사진 왼쪽)와 1967년 디자인한 가수 밥 딜런의 포스터예요. /위키피디아·MoMA
당시 디자인계는 'Less is More(간결할 수록 더 풍요롭다)'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형태의 단순함을 칭송하고 있었어요. 간결하고 가독성 높은 서체인 '헬베티카'(1957년), 20세기 건축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직사각형 빌딩인 '시그램 빌딩'(1958년)이 대표적이었지요. 하지만 푸시핀스튜디오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두껍고 장식적인 서체, 20세기 초 유행했던 아르누보풍 화려한 무늬를 디자인에 도입하고 서양 고전 회화나 동양화, 이슬람 예술, 만화 등도 적극 활용했어요. 이런 시도는 엄격했던 모더니즘 작품들과 대조를 보여 대중의 갈채를 받았지요.

푸시핀스튜디오 시절 글레이저의 대표작은 1967년 발매된 포크 가수 밥 딜런의 히트곡 모음집 포스터입니다.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초상화를 참고한 이 작품은 밥 딜런의 옆모습을 검은색 실루엣으로 그리고 그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이슬람풍 곡선과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했어요. '사이키델릭(환각적인)'이라 불린 이 포스터는 600만장 넘게 팔린 밥 딜런의 음반과 함께 대중문화계에 큰 화제를 낳았습니다.

1975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워 독립한 글레이저는 인생 최고의 걸작을 디자인합니다. '아이러브뉴욕(I♥NY)' 로고였지요. 당시 뉴욕은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불황 때문에 암울한 분위기였어요. 범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실직자는 늘어갔죠.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도시 곳곳은 쓰레기와 오물이 넘쳤어요. 뉴욕시는 '범죄 도시'란 오명을 벗고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글레이저에게 캠페인 로고를 부탁했습니다. 슬로건은 이미 '아이러브뉴욕'으로 정한 상태였지요.

뉴욕시와 첫 회의를 하러 가던 글레이저는 택시 안에서 '러브'를 사랑을 상징하는 모양인 '♥'로 바꾸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해요. 이어 유명 팝 아티스트인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표작 'LOVE'에서 영감을 얻어, 사각형을 4등분한 뒤 위에는 I와 ♥를, 아래에는 N과 Y를 배치한 로고를 탄생시켰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뉴욕 시민들은 너도나도 'I♥NY' 로고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지요. 로고를 새긴 기념품은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사야 하는 명물이 됐어요. 글레이저는 'I♥NY'의 저작권을 처음부터 뉴욕시에 넘겼는데요. 자신의 디자인이 뉴욕의 공공재산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해요. 덕분에 우리는 이 로고가 들어간 기념품을 아주 싼값에 살 수 있게 됐지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글레이저는 2009년 미국 정부가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미국국가예술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는 최초의 수상이었어요.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